초조한 도시를 괄호에 넣다
한국의 도시는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의 장소다. 오늘 멀쩡하던 건물이 내일이면 철거되고, 내일 세워졌던 건물은 몇 달 후면 바로 옆에 세워진 더 높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밀도는 더 이상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얼마나 많이 바뀌냐가 아닌,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도시의 빠른 유속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매일 괴로워하며 도시를 살아가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도시의 초조함을 소화하며 살아간다. 자기가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것은 괄호에 넣어버린다. 저자에게는 카메라가 바로 도시의 초조함을 괄호 안에 넣는 방식이다. 즉, 그의 목적은 도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고, 도시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기록하려는 것도 아닌, 도시를 살아내기 위함이다.
일단 카메라에 담긴 도시는 무해한 것으로 바뀐다. 현실에서 압력을 가했던 도시의 밀도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읽어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도시를 읽어내기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책이나 영화 같은 일반적인 ‘읽기’의 대상과 달리 도시에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출간된 전작 『초조한 도시』와 비교할 때, 이번에 출간된 후속판은 도시를 읽어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저자가 말하는 밀도와 고도, 무엇보다 속도가 즉각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같은 자리에서 시간 간격을 두고 찍은 몇몇 사진들은 저자가 한국의 도시 경관을 한마디로 압축한 “기승전아파트”라는 표현을 실감하게 한다. 고도의 측면에서는 2016년 완공된 롯데타워(높이 555미터)가 상징적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높은 건축물의 높이(부르즈 할리파 828미터)가 이미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인 북한산(높이 836미터)에 근접한 현재,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자연경관이 아닌 인공물이 차지한 지 오래다.
결국 이 책에 실린, ‘빛 충동’에 빠진 한 비평가가 지난 20여 년간 찍은 사진들은 의도치 않게 역사성을 띤다. 그 역사는 심도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하거나, 정교한 담론이 뒷받침해야 하는 것이 아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로서의 역사다. 괄호 안에 얌전히 보관하는 대신, 다시 괄호 밖으로 꺼내 함께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폐허 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비참한 기분으로 살지는 않는다. 우리는 도시를 소비하기도 하지만 생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폐허는 계속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꼭 거창한 건축물이나 토목 구조물을 세워야 도시가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도시의 구석구석에 써서 채워 가는 작은 의미-추억, 흔적, 행위, 정보-들을 통해 도시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