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시인이 취한 역사에 대한 세계관이 학계의 중립적이고 일반적인 고고학이 아닌, 기독교적 관점을 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편향은 작품이 진행되고 확장될수록 나름의 정당성을 갖게 되는데, 무엇보다 순백의 언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과학자 개개인이 가진 특정 이념은 은연중에 전제된다. 둘째, 시인이 빌린 역사는 특정 역사이며 이로써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로 바뀐다. 요컨대, 시인은 그 역사의 흐름이나 진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불러온 무수한 이념-효과들을 살피고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미래를 밀고 가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 ‘역사’는 ‘종교’로, 동시에 ‘종교’는 서사적 ‘알레고리’로 변형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두 번째 작품으로 신이 아닌 타락 천사, 곧 ‘루시퍼’를 등장시키며 ‘빅뱅’에서시작된 통상적인 시적 원근을 일찌감치 교란시킨다.
아벨은 양을 치며
떠도는 유목민
영역 다툼도
있을 법했다
야훼는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거부했다
분히 여겨
동생을 돌로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농사를 지으며
철놋으로
연장을 만들어
정착촌을 건설했다
늑대 젖을 먹고
함께 자란
쌍둥이 형인 로물루스도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자기 이름을 따서
로마를 창건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어머니가 딸을
살해하는 DNA
양같이 보이는
코끼리 수컷조차
다수의
암컷을 차지하러
친족 살해도 서슴지 않는
카인에게서부터 당신까지
권력과 명예와 부의
바벨탑을 쌓는
모두 모두
번식하는 기계일 뿐*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 전문
이 작품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은 애초부터 “친족 살해도 서슴지 않는 / 카인에게서부터 당신까지 / 권력과 명예와 부의 / 바벨탑을 쌓는 / 모두 모두 / 번식하는 기계”라는 것.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하기까지, 그 종이 현생 인류로 자리잡을 때까지, 그리고 이후 언어가 만들어지고 역사가 기록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 유전자’일지 모른다. 시인이 초창기 역사에서 포착한 것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동족 말살, 인종 청소도 서슴지 않는 죽음의 지배자다. “오죽하였으면 / 신들은 인간을 / 대홍수로 쓸어버리기로 / 작정했을까”(「대홍수 이야기」)
근세도 예외는 아니다. 시인은 ‘쿤타 킨테’라는 이미 상징화된 인물을 통해 이를 노골적으로 조롱한다. 시인은 분명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를 노래한다. “아프리카 작은 마을 / 사람들의 축복 속에 /
태어난 쿤타 킨테 / 열일곱 살 때 / 나무하러 간 숲에서 / 납치돼 / 아메리카 노예로 팔려 / 한 달간 / 두 손발이 묶인 채 / 화물칸 짐짝처럼 / 운송 중 / 생명 유지 정도의 / 먹이만 제공 받는 / 태반이 사망한 가운데 / 살아남아 / 알렉스 헤일리의 / 조상 찾기 프로젝트 / 소설 「뿌리」의 / 주인공이 됐다 / 우연히 집안의 내력에 / 관심을 갖고 / 십여 년 세월 / 아프리카 서부 / 작은 마을까지 가서 / 찾은 조상은 / “발가벗은 채로, /쇠사슬에 묶이고, 발이 채워져”(「쿤타 킨데」).
이렇듯 이상옥 시인은 종교를 통해 인류가 살아온 자취들을 인용하면서 그 누적된 빈 곳을 살펴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역사를 숨겨진 사건의 ‘역사’로서 다시 쓰기에 이른다. 『휴먼 히스토리아』에 내재한 언어의 힘은 종교를 ‘종교’로서, 또한 역사를 ‘역사’로서 파훼한다는 것에 있다.
◨ 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시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A] 휴먼 히스토리아는 스토리의 라틴어 어원이 히스토리아(histórĭa)라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신의 설계에 의해서 로봇이 아닌 자유의지를 가진 자율적이면서도 한계 내
존재라는 역설을 지닙니다.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의 역사는, 그것의 회복을 위한 비뚤어진 욕망의 바벨탑 쌓기에 다름 아니고
신의 의지에 가로막히는 좌절의 점철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기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인간은 도덕이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선 의지를 추구하는 것 같아도 근원적으로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작동하였습니다. 바벨탑 꼭대기를 밟고 지상으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써 새로운
여명이 열리게 됩니다.
[Q] 이번 시집의 특징은?
[A]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예수 탄생 직전까지의 BC의 역사적 흐름을 추적하며 극적 모멘텀을 시적
형상으로 포착해서 ‘휴먼 히스토리아’라는 제목의 장시로 형상화했습니다. 이 장시집은 일종의 형태시적 기법으로 시의 구성을 탑처럼 뾰족하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작품은 아니지만 작은 탑 형상의 포즈로 탑기단을 표상하는 마지막 행은 길이를 조금 길게 행태화돼 있습니다. 한 편 한 편 비죽비죽 솟은 언어의 축조물들은 그 자체로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것들의 욕망을 표상합니다. 작은 탑들을 표상하는 에피소드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하나의 파일, 하나의 텍스트로써 구축된 장시는 거대 담론으로 완결성을 지닙니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의 간극이나 불연속성 등도 그 자체로 인류사의 불안정성을 함의하는 전략이고 책략이며 상징입니다.
[Q] 나는 어떤 시인인가?
[A] 시론 없는 시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나 신화 속에 내재하는 무수한 극적 모티브들을 불러내어 시라고 호명하는 작업을 주로 합니다만 그것만으로 나의 시가
모두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시는 때로 방법론이나 내 의지를 넘어서 스스로 말을 하기도 합니다. 짧은 언술로 이뤄진 가장 매혹적인 양식인 시로 나를 표현하고 세계에 발언할 수 있는 시인이라는 이름이 내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정신적 장식이고 다이아몬드입니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