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구석구석 숨은 별미, ‘향토밥상’을 찾아
프랑스·중국 등 이른바 ‘음식대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국토가 넓거나 민족 구성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식재료를 활용한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비교적 좁은 땅에 외국 문물을 적극 받아들일 기회가 적었던 대한민국은 어떨까?
도토리묵·골뱅이·깻잎·참외…,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거의 대부분 한국인들만 식용한다는 것이다. 탁자·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에서마저 낯선 채소가 바로 깻잎이다. 일본은 멜론에 밀려 한때 사라졌던 참외가 최근 ‘차메’라는 한국 이름을 달고 팔린다고 한다. 독초로 여겨지는 고사리·두릅도 한국에서는 맛있는 제철 음식으로 대접받는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 국토의 70%는 산으로 이뤄졌다.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지역과 지역을 가로막는 산은 한때 국가 발전을 막는 장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산이 만들어낸 경계선은 달리 생각하면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문화와 생활풍습을 만들어낸 요인이기도 하다. 급속한 산업화, 미디어 발달로 인한 취향의 획일화에도 향토의 맛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농민신문 문화부 향토밥상 취재팀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만났던 향토 음식들을 책으로 엮어냈다. 2022년 2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연재된 ‘향토밥상’ 기획기사 시리즈가 이 책의 토대가 됐다. 지역민들을 직접 만나고, 자연 환경과 계절뿐 아니라 지역의 독특한 환경을 반영한 신선한 음식들을 널리 알린다는 것이 취지다.
특히 조선시대 왕의 수라상이 전국 각 지역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창(窓)이 됐듯, 지방소멸 시대를 극복하자는 사명으로 향토밥상 취재팀 기자들은 발로 뛰며 65가지 고향의 맛을 찾아냈다. 목차를 보면 “이런 음식이 있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낯선 이름들이 한 가득이다. 우리가 몰랐을 뿐, 한식의 세계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개성이 살아있다.
경기 양주 연푸국, 강원 강릉 꾹저구탕, 충남 당진 꺼먹지, 부산 기장 앙장구밥…. 이름만 들어서는 짐작도 안가는 음식들의 유래와 모양새, 맛 등이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펼쳐진다. 지역별 향토음식들은 우선 현지의 자연을 담고 있으며, 계절에 따라 가장 맛있는 시기가 있다. 아울러 각 지역의 풍속과도 깊은 연관성을 가졌다.
양반의 고장 경북 안동에서는 귀한 은어로 손님 대접에 낼 건진국시 육수를 냈다. 제주에서 혼례날 먹는 접짝뼈국은 예복을 차려입은 신부가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숨어있다. 쌀 주산지인 경기 이천의 볏섬만두는 쌀가마니 모양으로 빚어 풍작을 기원했다. 각지의 향토음식은 단순한 먹거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삶과 문화, 공동체 등 많은 것들을 담은 존재다.
시대 변화에 따라 사라져가는 식재료를 조명하고 있는 것도 ‘향토밥상’이 가진 미덕 중 하나다. 강원 양양 특산물인 송이버섯은 올해 폭염으로 최악의 작황을 기록했다. 자생지도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전북 전주 오모가리탕은 민물고기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재료 수급이 어려워졌다.
기후 변화와 남획의 위험성을 새삼 깨닫는 동시에, 먹거리를 지키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있어야 함을 ‘향토밥상’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고향의 맛을 보존하려는 농민들과 어민, 식당 사장님들의 고군분투에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향토밥상’은 전국일주를 하듯 경기·강원·충청 등 각지의 맛을 탐험하는 즐거움을 준다.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만드는 생생한 묘사를 보면 어느새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미슐랭 레스토랑을 찾아가지 않아도, 비행기를 타고 외국까지 여행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몰랐던 한국의 맛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다채로운 대한민국의 미식세계를 담아낸 ‘향토밥상’의 일독을 권한다.(정세진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