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불교조각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는 하대에 지방으로 확산되어 갔으며, 후삼국이 분립한 시기에는 정치ㆍ사회적 변화와 함께 경주의 귀족적인 불교문화가 개성과 철원 등 한반도 중부지역으로 서서히 이식되어 갔다. 이에 따라 통일된 고려왕조 초기에는 지역에 따라 분화된 나말여초의 다양한 불교미술 양상과 통일신라 왕실미술의 전통이 동시에 전개되어 서로 다른 양식과 도상이 공존하였다.
저자는 고려시대의 불교조각을 종래의 시기구분법을 따라 무신의 난이 시작되는 1170년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본바, 이에 따르면 전기에는 다양한 양식적 특징으로 분화되었던 각 지역의 불교조각이 새로운 통일왕조 ‘고려’ 안에서 서로 융합되고 발전되어 갔으며 사찰의 창건과 중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조성된 웅대한 불상들에는 통일 고려의 국가적 기상이 한껏 발현되었다. 『고려사』권1, 2 ‘세가’의 태조 때 기사만 보더라도 왕건은 즉위 직후 태조 2년(919)에 수도 개경에 법왕사ㆍ왕륜사 등 10개 사찰을 창건하였고, 태조 19년(936)에는 개경에 광흥사ㆍ내천왕사ㆍ현성사ㆍ미륵사 등을 건립하였으며 후백제와의 격전지였던 연산에 개태사를 창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경 일대 사찰에 봉안되었던 예배존상들이 오늘날 전하지 않고 있어 그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세운 개태사의 석조삼존불입상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어 당시 불교미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10세기의 불교조각이 규모가 장대하고 지방화의 특징을 보이는 데 비해, 광종과 성종 연간에 통치체제가 정비된 후 문화적으로 ‘고려’의 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현종대 11세기의 불교조각은 단아하고 귀족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있어 성격적인 차이를 보인다.
고려후기에 이르러 12세기에는 수선사와 백련사와 같은 결사운동이 일어났으나, 13세기에 장기간 몽골과의 전란을 겪으며 정토를 염원하는 신앙이 유행하게 되고, 그 뒤 원 간섭기에는 지배층들이 불교교단과 유착되어 기복적으로 기울면서 결사운동은 힘을 잃고 정토왕생을 구하려는 신앙 경향이 더욱 성행하여 아미타불상이 전국적으로 조성되었다. 또한 무신정권과 원 간섭기의 왕실 및 귀족들에 의한 국가 차원의 불사 외에도 일반 기층민에 의한 불사활동도 매우 활발히 이루어져 현세의 복을 구하고 안녕을 염원하며 소형 불감과 호지불, 호신패 등 다양한 조각들을 만들어 지니게 되었다. 조각기법도 세련된 수준으로 발전하여 많은 걸작들을 남겨 고려후기는 명실공히 불교조각의 성숙기라 불리게 되었다.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의 한계와 극복
전반적으로 고려시대의 불교조각은 학술적 근거가 될 유물과 복장유물 등 자료의 부족으로 주변 자료와의 비교 연구와 추론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만큼 연구에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개경의 여러 사찰에 봉안되었던 불상들이 거의 전하지 않고 있어 존상의 조성배경을 명쾌히 밝히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방 소재의 불상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법주사가 손꼽히는 법상종 사찰로서 왕실에서 출가한 승려들이 주석하였던 곳이었던 만큼 상당한 실력을 갖춘 조각가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조성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가 전하지 않는다.
자료 문제 외에도 북송이나 요, 원 등으로부터의 영향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고려가 거란의 침입 후 요의 연호를 쓰면서 문화적으로는 북송의 문물을 수용하며 이중적인 교류를 하였는데, 요가 당 말의 불교와 그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북송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한화(漢化)되어 갔음을 고려하면 요의 미술을 북송의 미술과 구분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원의 영향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말할 수 없다. 원 간섭기에 원의 공주들이나 친원세력을 따라 고려에 왔던 원의 장인들을 통해 티베트 불교미술이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티베트 승려들이 원에서 활약하고 연경이나 항주 등지에 티베트 불교미술 요소가 보이는 불상들이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 제한적으로 나타났다가 명대 영락(永樂) 연간에 이르러서야 유행했다는 점, 조선초기 15세기 불교조각의 세부장식에서만 그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티베트 불교미술이 고려 불교계에 전폭적으로 수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한계를 성실한 연구로써 극복해 내고 있다. 특히 돋보이는 점은 유물과 자료에 대한 정밀한 고고학적 연구, 1차자료와 선행연구 등의 문헌 연구 중 어느 것 하나에만 치중하지 않고 균형 잡힌 연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조각 전체는 물론 세부장식에 이르기까지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과 비교 등을 통해 양식의 특징을 찾아내고 있다. 풍부한 도판을 함께 제시하여 마치 유물을 줌인하며 보고 있는 듯하다. 고려사,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우리의 역사서와 중국의 역사서 등에서 정치ㆍ사회적 배경을 찾아내고, 불교경전 및 여러 문집 등에서 당시의 지배적인 정신세계를 추론하고, 조성발원문과 비명 등을 해석하여 직접적인 조성배경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고려의 사회와 문화의 변화와 흐름을 추적하고 고려인들의 생활상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저자는 이와 같은 40여 년간의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처음 책이 출간된 이후로도 새로이 발굴되는 자료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통해 고려 전 시기를 아우르는 불교조각 연구서를 보다 충실하게 꾸민 개정판을 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