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열렬히 말을 거는 시,
무모하면서도 다정한 결기
봄날의책에서 백인경 시인의 시집 『멸종이 확정된 동물』이 출간되었다. 2019년 성동혁 시인의 『아네모네』를 처음 출간한 이래, 최근 신해욱 시인의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까지 매 시집마다 뛰어난 시인들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온 ‘봄날의 시집’의 11번째 책이다.
2018년 첫 시집 『서울 오면 연락해』 출간 이후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펴낸 백인경 시인은 문예지 지면, 개인 온라인 공간, 다양한 오프라인 전시 현장을 다채롭게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해왔다. 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행위할 수 있을지 궁리해온 시인은 그 활동의 텍스트 묶음집으로서 두 번째 시집 『멸종이 확정된 동물』을 낸다.
그의 시편들은 여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고백이 깃들어 있다. 생생한 일상 정경과 핍진한 발화가 진솔하고 위트 있는 언어로 나타나는데, 『멸종이 확정된 동물』은 삶의 지극한 진실을 품은 말들을 부지불식간에 툭 던져놓으며 낯선 매혹을 환기한다. 아울러 백인경의 시편들은 마음 씀이 돋보이는데, 그의 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골몰한다. 인간의 어떤 편협함과 무신경함을 반성하고 내치되, 용기와 자유로움을 시에서 내내 발산한다. 이는 백인경의 시가 “고백할 수 있는 나의 슬픔과 상한 마음, 고백할 수 없는 앓는 타자의 고통과 해진 마음, 이 모두를 고백하려 드는 무모하면서도 다정한 결기”(성현아 평론가·해설)를 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가 그렇게 좋으면 평생 거기서 살아
엄마는 갈 거야
그러던 엄마가 진짜로 사라졌을 때
별안간 어른이 돼버린 거지”
돌연한 진실을 품은 일상성의 시
『멸종이 확정된 동물』이 사람에게 열렬히 말을 거는 시집이라고 했을 때, 그 일상을 발화하는 목소리는 편하고 흔한 말이면서도, 삶의 돌연한 진실과 비의를 품고 있는 듯하다. 가령 묘한 매력이 압권인 시 「이글루」에서 “엄마는 갈 거야” 말하고, 정말 엄마는 가버린다. 모녀로 살면서 옥신각신 투닥거리고 다독거리며 경험했을 숱한 양가감정과 애증…… 그리고 “가란다고 진짜 가는 사람”이 되었을 때 느껴지는 쓸쓸함을 시는 힘들이지 않고 능란하게 표현해낸다. “오래 머문 발자국처럼 배꼽이 깊어”진다는 이미지를 통해 빼어나게 형상화한다. 백인경 시의 독특한 지점은 이러한 일상성에 있다. 어떤 시는 “신도림역에서 모자를 두고 온 적이 있어”(「OOTD」)라고 시작되고, 또 “델몬트 오렌지주스병”에서 “존재 자체로 상징적인 거”(「위시리스트」)를 보기도 하며, 구체성을 띤 단어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얼얼한 매혹이 깃들어 있다.
시 「뒤풀이 건배사」는 입말의 향연이다. ‘뒤풀이 건배사’라는 형식 그대로 무슨 일을 “잘 끝낸” 후 기념하거나 회고하기 위해 “이 자리를” 주최한 누군가의 말들이 이어지지만, 참석자들의 소곤소곤대는 말소리가 괄호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끼어든다. “(안주 뭐 시켰어?)” “(노래방 가고 싶은데)”라는 말들 이후 마지막에는 “무작정 저를 사랑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만큼 금방 잊히는 게 없거든요”라는 육성이 이어지는데, 이처럼 사뭇 진실에 가까운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불시에 툭 던져놓는 지점이 매력적이다. “손목엔 검은 봉지를 걸고, 한 손엔 와인잔을 든 채 담벼락을 넘어오는 낡은 내가 있잖습니까”(「하우스 와인」)라는 발화 역시 당차고 쓸쓸하지만 자유로움을 거느리고 있다. 백인경의 시에는 매력적인 고백의 말들과 잠언이 풍성하다. 이는 『멸종이 확정된 동물』이 “지극한 내밀함과 극도의 개방성을 지닌 대화를 시도”(성현아 평론가·해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목숨이요
하나잖아요
누구나 공평하잖아요
공평해야 하잖아요”
자유로움과 용기의 시
백인경의 시에는 책임감과 용기가 스며들어 있다. 시집 제목을 따온 시 「멸종이 확정된 동물 24선」에서 화자는 인간의 무신경한 폭력성을 인식하며 “언니, 왜 우리한테 / 울음을 그치는 법만 알려줬어요?”라고 되물으면서도 “공평해야 하잖아요”라고 직접적으로 발화하며 최대한 무해한 생을 살고 싶다고 다짐한다. 이는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며 “부고를” 접할 때에도, “어쩌다”가 아니라 “어째서”라고 문제시하며 분노와 원망이 “철썩 치”(「운동성」)미는 시인의 태도와도 공명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대해 골몰하며, 이를 “은폐하려는 움직임”의 여부라고 짚어내며 “도화지만큼만 정당해졌으면 좋겠다”(「담론[fence]」)라고 피력하는 자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는 “매끄럽지 않”고 “과도하고 당돌하고 거침없”으며 “읽는 이에게로 가 마찰할 수 있게”(성현아 평론가·해설) 한다.
그렇다면 이때 인간성은, 인간의 마음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그의 시는 “바삭한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금만 부딪혀도 금세 곰팡이가 피고 상해버리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싶어 하는 습성” 쪽, 그러니까 너무 쉽게 협소한 것에만 매몰되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시의 제목 ‘파우더형 인간’처럼 “단단”하지만 “바삭한 슬픔” 쪽으로 “후천적 진화”가 필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서로를 핥는 방식으로 / 최선을 다해 바스러지는 연습이”(「파우더형 인간」) 요청되는 것이다. 그 바삭한 슬픔은 슬픔이 끝내 자기 자신으로 향하지는 않으며, 슬픔 자체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하는 용기와 자유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슬픔. 꿋꿋하게 타자의 슬픔을 껴안고 마주하는 일을 해낸다. 『멸종이 확정된 동물』은 그러한 방식으로 “마음을 저렇게 키우는”(「유기」)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