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난 암흑의 진실
지금 세계 곳곳에 화염이 솟구치고 시민들이 죽고 있다. 그중 이스라엘이 관계한 가자지구 폭격이 있고 이란까지 공격했다. 중동의 정세는 몇 년째 매우 불안하다. 그야말로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전쟁을 맞이하는 민간인의 희생이 줄을 잇는다. 피로 얼룩진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팔레스타인을 추방하고 그 자리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의 문제이다. 왜 오늘까지 이러한 비극은 어디서 시작되어 전개되고 있는가. 유대인 역사학자 일란 파페에게 그 답을 들을 수 있다.
“가장 용감하고 강직하고 날카로운 이스라엘 역사학자” 일란 파페의 대표작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가 최근에 쓴 한국어판 서문을 새로 붙이고 재출간됐다. 이 책은 2017년 열린책들에서 ‘팔레스타인 비극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국내에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파페는 자국의 만행을 감추려는 이스라엘의 주류 역사관에 반대하며 198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이스라엘의 대표적 역사학자 중 한 명으로,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고 모국의 역사 왜곡을 지속적으로 고발해 왔다. 이 때문에 파페는 일부 시민들의 무자비한 협박과 동료 교수들의 배척을 받았고 재직중이던 자국의 대학을 떠나 영국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파페는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의 엄청난 사건의 연유에는 영국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파페의 연구는 초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종족 청소’라는 시각으로 파헤친 역사서다. 파페가 조사한 역사 사료에 따르면 1948년 3월부터 이스라엘 건국 세력인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본격적으로 추방했다. 추방이 일단락되었을 때 팔레스타인 난민은 80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왜곡한다. 이스라엘 건국을 ‘비어 있는 땅에 정착해서 사막에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한 것으로 미화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강제 추방에 관해서는, 이미 건국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아랍군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고향에서 떠났다고 주장한다. 강제 추방은 없었고, 아랍의 침략에 맞선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파페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기만적인 태도를 역사적 근거를 들어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스라엘 핵심 인사들의 일기, 군사 기록, 구술사 자료 등을 토대로 학살, 파괴, 겁탈 등 이스라엘 건국 세력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얼마나 잔인한 일을 계획적으로 저질렀는지 폭로하고, 이를 종족 청소라는 비윤리적 전쟁 범죄로 정의한다. 또한, 이스라엘을 향해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그것만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다.
종족 청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지역의 역사를 지워 버리는 것
무시무시한 단어, ‘종족 청소’란 무엇인가? 파페는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계기로 생겨난’ 이 개념을 ‘특정한 지역이나 영토에서 종족이 뒤섞인 인구를 균일화하기 위해’ 특정 인구를 ‘강제로 쫓아내는 것’으로 정의한다. 나아가 주택을 파괴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지역의 역사를 지워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종족 청소’ 개념이 생겨나기 40여 년 전에 일어났지만, 파페는 당시에 이스라엘 건국 세력이 벌인 행동을 명백한 종족 청소의 사례로 규정한다. 한편으로는 아랍인, 유대인이 섞여 살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이 절대다수가 되도록 아랍인을 강제로 쫓아내려 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건국 세력이 ‘플랜 달렛’이라 명명한 종족 청소 계획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군대를 지휘해 주택, 재산, 물건 등을 방화하고, 사람들을 추방했으며, 쫓겨난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잔해에 지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학살, 강간 등의 범죄 역시 일어난다.
이러한 끔찍한 이야기들은 이스라엘의 공식적, 대중적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1948년의 상황에 대해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에 이어 아랍에 의한 ‘제2의 홀로코스트’가 임박했던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군사적 수단을 정당화했고, 이스라엘 교과서는 ‘유대 쪽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냥 남으라고 설득했다’는 거짓 역사를 서술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1948년 3월에 위협받은 쪽이 자신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유대인 공동체는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항복해야 하는 사태를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고 이스라엘은 별 어려움 없이 팔레스타인 청소를 수월하게 진행해 나갔다. 그 결과 1948년 팔레스타인인의 85%가 난민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은 왜 이스라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팔레스타인 내부에는 시온주의 세력에 저항할 지도부가 거의 없었고 전투 조직들도 자취를 감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조직들은 모두 ‘유대 민족의 고국을 팔레스타인에 세워주겠다’고 약속한 영국의 친유대적 기조에 반발해 일으킨 1936년 반란에서 영국군에 의해 망명길에 오르거나 해산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당시에 영국의 위임 통치령이었다.
전 세계가 조장한 참사
파페는 팔레스타인을 도와주려는 효과적인 외부 지원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팔레스타인의 지도자들과 전투 조직을 무너뜨린 영국은 ‘플랫 달렛’이라는 청소 계획이 완성된 이후에 더이상 법질서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유대와 아랍 사이에서 완충 지대 역할을 하던 군대를 서둘러 철수시켰다. 상황을 완연히 유대 쪽에 유리하게 조성해 준 것이다. 또한 유엔은 분쟁 해결 경험도 없고 팔레스타인 역사도 모르는 이들로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를 조직했고, 그 위원회는 시온주의에게 팔레스타인 땅 절반을 분할해 주어야 한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파페는 이 결과를 두고 ‘불법적인 동시에 부도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토착민들은 아메리카, 유럽 등지의 다른 모든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정착민 공동체, 즉 유대인 공동체와 ‘땅을 나눠 갖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대 쪽에 영토의 절반을 할양한다는 이 결과는 1947년 11월 유엔 총회 ‘결의안 제181호’로 채택되었고, 수면 아래에서 터지기 일보 직전의 종족 청소에 불을 붙인 결과를 낳았다.
결의안 제181호가 채택되는 것을 보면서도 이집트, 레바논 등의 이웃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급하게 생각지도 않았고 여기에 개입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파페에 따르면, 각국의 외무장관들은 논의를 최대한 끌면서 군사 개입을 연기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에 지원군을 파견하게 됐지만, 각국은 팔레스타인이 패배했다는 사실과 자국들의 군대가 유대 군대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군대를 소유했던 트랜스 요르단은 시온주의 세력들과 팔레스타인 땅을 나눠 갖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의 태도는 조금 다른 듯했다. 파페에 따르면, 미국은 결의안 제181호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에 제재 위협을 가하면서 강제 추방으로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무조건적인 본국 송환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내의 유대인 로비 집단이 의회와 백악관에 영향력을 휘두르면서 그 주장은 좌절됐고, 이후에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입장에 맞춰 분쟁을 해결하려 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비극
종족 청소는 1949년 1월에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지만, 완벽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이스라엘의 핍박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130만 팔레스타인인에게서 총 1억 파운드를 몰수하고, 그들을 팔레스타인 영토의 3%밖에 안 되는 지역에 살게 하는 등 체계적이고 공식적으로 약탈을 감행했다. 게다가 아랍어였던 마을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바꾸고 토착민이 살던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하나둘씩 민족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내놓는다. 지금 일어나는 전쟁은 바로 이 ‘종족 청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살기를 원한다. 이스라엘은 난민 문제나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 요구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기각해 버린다. 귀환을 허용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결국 역사적으로 비난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건국의 도덕적 정당성에 근본적인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1948년의 참극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이다. 파페는 ‘그때 저질러진 악행을 바로잡아야만 이 지역의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바로 이 책을 통해 파페가 1948년에 자행된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이유다. 허구적 이야기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자기기만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가려는 것이다.
파페는 서문에서 이 책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혀 놓았다.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둘 다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고자 한다면, 과거로 떠나는 이런 고통스러운 여정이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바로 이 길을 열고자 하는 시도이다.” 모국 이스라엘이 벌인 역사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강직한 역사학자 일란 파페의 노력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꼭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