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에 투자하는가, 시간에 투자하는가?
-시간을 가치로 바꾸는 하루 11시간의 마법!
부자와 빈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다. 부자는 시간을 추구하고, 빈자는 돈을 추구한다는 것은 미국 월가에서 장기투자의 중요성, 복리 효과를 추구하라는 말로 흔히들 사용된다. 다른 말로, 부자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투자하고, 빈자는 돈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다는 의미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자는 이 시간을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재료, 즉 자원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빈자는 시간에 대한 소유권을 강조하여 타인에 의해 자신이 소모되는 것을 경계한다. 즉, 재산을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람들의 삶에서 현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또 다른 관점을 형성한다. 시간에 대한 관점 차이는 습관을 다르게 하고, 이 습관이 바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빈자)’를 만든다. 부자에게 시간은 자원이고, 가난한 사람에게 시간은 재산이다!
▶ 시간은 지켜야 할 재산이 아니다!
영어로 자산은 ‘Assets’로 표현되고, 주로 경제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재산은 ‘Property’로 표현되고, 법적인 소유권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자산’은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사용되고 투자 재원으로 사용된다. ‘재산’은 법적인 소유권이 강조된 의미다.
한자를 살펴보면, 자산(資産)에서 ‘資(자원 자)’는 ‘자원’, ‘재료’, ‘자본’을 의미하고, 産(낳을 산)은 ‘생산하다’, ‘나타나다’, ‘창출하다’의 뜻을 가진다. 즉, “자원을 통해 창출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재산(財産)에서 財(재물 재)는 ‘돈’, ‘재물’, ‘부’를 의미하고, 産(낳을 산)은 자산과 마찬가지로 의미로 해석된다. 즉, “재물에서 발생한 것”을 말한다. 자산은 주로 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한 활용 가치, 재산은 법적 소유권을 보존해야 할 가치를 말한다. 결국, 자산은 투자를 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의미가 있고, 재산은 지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자에게 시간은 투자자산이고, 부자는 투자를 통해 그 무엇을 남긴다. 빈자에게 시간은 지켜야 할 재산이고, 아쉬움을 남긴다. 이것이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요체다.
▶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하루 11시간의 마법!
종업원이 회사와 계약한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시간을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판매라고 생각한다. 그 대가에 관해 평가한다. 빼앗긴 시간 재산을 아까워한다. 반면, 시간을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얻을지, 배울지를 고민한다. 투자 효과 극대화를 고민한다.
“직장에서의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가? 출퇴근, 점심시간,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시간까지 합치면… 돈을 버는 시간 30년을 기준으로 인생 시간 100년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30~60대의 1년은 기본적으로 3년 이상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30대의 출발선 및 중도 이직 등의 노력이 50대 수입의 양을 결정한다면, 30대의 1년은 4~5년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50대의 수입이 가장 높다. 50대의 수입 양은 30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직장생활에서의 시간을 한번 환산해 보자.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면 총 16시간이 깨어 있는 시간이라고 가정하고, 출퇴근 시간 2시간, 점심시간 포함 9시간을 더하면 11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깨어 있는 시간 총 16시간 중 11시간은 68%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휴일을 제외하면, 68%를 직장에서 보내는 것이다. 그만큼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고, 직장에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 하는 것이 시간당 가치와 대가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출근과 퇴근 사이 8+3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이 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돌려야 한다. 회사에 고용된 것은 시간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투자한 것이다. 최고의 결실은 봉급이 아니라 ‘배움’이고, 이를 통해 리더가 될 수도, 영원히 팔로워가 될 수도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시간을 가치로 바꾸는 하루 11시간의 마법’은 이 같은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그 깨달음은 곧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길’을 가는 동안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절대 반지’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