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이타오의 소설을 통해 접하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타이완의 역사와 문화
「원주민의 영웅」에 나오는 타이완인 ‘마라이야’와 「탐정 페이터의 수사 일지」의 러시아인 ‘페이터’는 자신들 앞에 일어난 사건의 경위를 추적하고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의 탐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보통의 추리 소설에서 탐정이라 하면 모름지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면서, 그 인물의 시선과 목소리가 소설 내에서 권위를 발휘하여 그들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마련이다. 기존의 탐정들과 비교해 봤을 때 마라이야와 페이터는 평범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 모습이며,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행동에 수긍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리이타오 소설 속 모호하고도 애매한 탐정의 존재는,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 타이완의 복잡한 사정을 곁들여 읽을 때 비로소 그 내막을 알아차릴 수 있다. 두 편의 소설과 함께 실린 해제는 리이타오의 소설을 태동시킨 세계, 요컨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근대 시기 타이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소설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영웅’이라 칭송받는 인물이지만 타이완 원주민의 입장에서 마라이야와 같은 인물을 과연 영웅이라 할 수 있을지, 페이터가 쫓고 있는 ‘무뢰한’이라 불리는 인물이 어떠한 사정에 놓여 있는지 등을 고려하다 보면 소설의 의미 또한 훨씬 다채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 소설들을 번역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실제 내가 타이완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통해 본 타이완과 생활을 통해 만나는 타이완은 무척이나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중국과는 다르고,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았으나 일본 문화를 무척이나 환영하며, 길거리 꼬맹이들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또 충효(忠孝), 신의(信義) 등 유교 용어가 포함된 지명이나 도로명을 사용하면서도, 발이 닿는 곳마다 그 지역 지신(地神)을 모시는 사당이 즐비하다. 차원이 다른 다양성에 혼미해져, 타이완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그때, 눈에 들어온 작품이 「원주민의 영웅」과 「탐정 페이터의 수사 일지」였다.”
(해제 中에서)
이 밖에도 「원주민의 영웅」과 「탐정 페이터의 수사 일지」에는 흥미롭게 읽힐 요소가 한가득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타이완 섬의 깊은 산 속에서부터 아시아 대륙 동북쪽 끝 만주까지 이어지며, 타이완 원주민, 한인, 러시아인, 유대인 등 여러 국적의 인물들이 제 개성을 드러낸다. 일제 식민 통치를 경험한 한국의 상황과 타이완의 상황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리이타오의 소설을 읽는 한 방법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혼재하고 숨겨진 의미와 상징들로 북적대는 리이타오의 소설 세계, 그리고 이러한 리이타오의 소설의 배경이 된 출렁이는 20세기 초 타이완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 틈에서 찾은 이야기, 틈 많은 책장에서 보내는 편지
틈 많은 책장의 두 번째 책은 20세기 초의 타이완 소설이다. 리이타오가 살았던 시대의 타이완에는 일본인, 중국인, 타이완 원주민 등 각기 다른 내력과 세계관을 지닌 이들이 집거하며 갈등하던 때이다. 이해관계 앞에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관습과 의리에 묶여 있던 관계들 또한 느슨해지는 세계에서 ‘추리 소설’이 탄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무뢰한’을 쫓는 리이타오의 문장들과 함께, 파도치는 20세기 초 타이완의 풍경 속으로 질주해 보자.
◆ 번역자가 보내는 편지
대중 매체, 특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그간 접해 온 타이완의 모습은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상견니〉 등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아련한 첫사랑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실제 타이완은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매우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나라이다. 일제 식민지 시기 작가 리이타오의 추리 소설을 통해 타이완의 다른 일면을 엿보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