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려내는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건 그야말로 미래에 어울리는 선택 아닌가.
장르적 재미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청소년 소설이 담아내야 할 문학적 전망을 보여준다.”
-심사평(구병모, 김민령, 이기호, 최영희 작가)
“날 꼭 녹여 줘. 빨리 와! 기다릴게”
얼어붙은 땅에서 누군가를 녹이는 선택에 대하여
소설은 멋대로 집을 나가 얼어버린 서리를 찾으러 나서는 서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괴짜 천재 과학자인 할머니의 예언대로 지구는 어느 날 갑자기 꽁꽁 얼어버렸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일상이 스냅숏처럼 멈춰버렸다. 서진, 서리 자매는 기이할 정도로 풍족한 아지트에서 살아남는다. 할머니가 미리 마련해둔 아지트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섬세하게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구해낼 수 있는 고도의 장비가 준비되어 있다. 그 둘만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바로 서리가 서진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언니가 처음으로 녹이는 인간이 나였으면 좋겠어. 언니 말대로 혹시 잘못된다면 그건 그냥 내 잘못이잖아. 언니가 누누이 강조한 대로 난 책임질 수 있는 일을 벌인 거야.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날 꼭 녹여 줘. 빨리 와! 기다릴게.” -본문 29~30면
10대 주인공 서진에게 수많은 냉동 인간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준 설정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주인공에게는 어떠한 선택 조건이나 기준도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만이 부여되었다. 과연 어른 없는 세계에서 아이들의 선택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지만
잘못된 선택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서진은 자신의 바람대로 서리‘만’ 녹여서 돌아오지 못한다. 서진은 혜성을 녹이고, 서리는 유진과 태양을 녹인다. 그렇게 집에 모인 다섯 아이들 앞에는 무겁고도 커다란 질문이 놓인다. ‘누구를 녹이고, 누구를 얼릴 것인가.’ 이는 다섯 아이들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에게 누군가를 녹일 권한이 주어진다면 누굴 녹일까? 대부분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우선일 테다. 그다음은 선량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서진은 약한 사람들을 녹이고 싶었다.
분명 존재하는데 세상에 없는 듯 보이지 않았던 선한 사람들을 녹이고 싶었다. -본문 197쪽
하지만 서리가 녹인 유진은 서진에게 끈질긴 트라우마를 안긴 학교 폭력의 가해자다. 입시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태양은 다시 얼려달라고 말한다. 서진이 혜성과 노인을 녹인 것은 순전히 실수였다. 이 모든 선택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중 일부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조차 흐려진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이들이 반드시 선량하고 올바른 사람을 골라서 살려낼 수 없었다는 점이 이 소설이 지닌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선택에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은 어떤 세계가 되어서든 두 명 이상 모여 있으면 반목하는 것이 인간의 항구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묵직한 질문을 청소년 주인공들의 시각에 담아 독자 앞에 던지며 청소년을 주체의 자리에 데려다놓는다.
“이 세계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소설의 인물들은 앞으로도 모험을 계속 할 듯
결말이 열려 있지만, 그들이 달려가는 길을 응원하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제1회 수상작으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_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