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에서 관찰되는 음악의 동시대성
‘악보들’의 출발점은 지금-여기의 음악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예컨대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악보들’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양 음악사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두 경향의 운동, 즉 음악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움직임과, 반대로 먼 곳으로 향하는 운동을 우리 신체와 맞닿은 ‘노래’라는 틀로 바라본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운동성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협력한다. 때때로 간단히 분리해 내기 어려운 상태로 뒤얽힌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의 흐름에서 특정 경향이 더 강하게 또는 독특하게 운동하는 순간들이 도래했고, ‘악보들’은 그 순간들을 포착”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움직이는 음악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흔적이 구체적으로 담긴 악보를 통해 긴 여정을 이어 간다.
틱, 톡, 촉, 또는 망치 두드리는 소리
오래 전부터 음악의 구심점이 되었던 선율과 달리 음형은 꽤 긴 시간 독립적인 음악의 재료로 쓰이거나 홀로 자기 충족적인 음악을 만들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선율이 없는 상태에서도 몇몇 작곡가들은 충분히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틱, 톡, 촉, 또는 망치 두드리는 소리」는 프랑수아 쿠프랭이 남긴 클라브생 모음곡에 포함된 곡이다. 3도 간격의 음형이 위아래로 계속 튀어 오르는 듯한 이 곡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부서진 화음을 연주하는 듯한 특유의 리듬이다. “드뷔시의 연습곡 「여덟 손가락을 위하여」 또한 음형이 도드라진 작품으로 이 곡에서는 화성이 아닌 음계가 곡의 주요 음형으로 쓰인다. 이 곡에서 음계의 기준점은 마디마다, 때론 박자마다 달라진다.” 이와 달리 “기준음에 단단히 닻을 내려놓고, 그로부터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리 튀어 오르며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오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프로코피예프의 「토카타」는 이와 대척점에 있는 곡이다.
음악의 역사에서 선율은 많은 경우 주요한 자리를 지켰고, 그 밖의 요소들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더 많은 실험이 이뤄진 곳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진 부분이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프렐류드가 수록된 『일레보르크 타블라투어』(1448)로부터 프로코피예프의 「토카타」(1912) 사이에는 “머나먼 거리가 있지만 여기엔 어떤 유사성이 있는데, 그건 바로 노래가 아닌 그 주변,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들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보려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