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로, 세계 전쟁사를 읽을 수 있을까?
역사를 들여다보는 방법은 많다. 한 컷의 이미지로 뇌리에 각인되는 사진 이미지부터, 텍스트로 이루어진 소설, 한 역사적 사건을 까지,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그리고 탄생 100년을 갓 넘긴 영화 역시, 끊임없이 스크린 속으로 역사를 끌어들여왔다. 영화가 인류 전쟁사의 대부분을 다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는 전쟁이 몰고 온 인간의 삶과 죽음에 주목해 왔다.
이 책은 영화로 세계 전쟁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저자의 여정이다. 1895년 영화의 탄생 이후, 미국 남북 전쟁을 다룬 D.W.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을 시작으로 고대 트로이 전쟁부터 십자군 전쟁, 식민지 전쟁, 1,2차 세계대전과 냉전, 그리고 최근 이라크 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쟁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특히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대규모 제작 시스템을 이용해 수많은 대형 전쟁영화를 제작해 왔다.
#2. 영화가 전쟁에 주목하는 이유는?
영화가 전쟁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영화 매체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 기술발달로 출현한 영화는 그 어느 매체보다도 전쟁의 서사와 스펙터클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 전쟁이 몰고 온 인간 드라마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공중전, 광활한 들판을 질주하는 기마병, 바다에서의 함포사격, 심지어 심해에서 벌어지는 수중전까지 전쟁의 활극과 극한상황을 담아내는 데는 활동사진(motion picture)인 영화만한 매체가 없다.
물론 전쟁사를 ‘콘텐츠로서의 영화’로 읽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영화 제작자나 감독의 해석이 자칫 역사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이 지닌 현실적인 메커니즘과 제작의 의도를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국가나 특정 단체가 영화제작에 개입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영화가 해석됐기에 역설적이지만 역사를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대체로 적과 아군에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전쟁영화는 대개 적대적인 입장에서 표현된다. 이 상반된 방식을 전지적인 관점에서 볼 수만 있다면 오히려 금상첨화다. 가령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독일군 입장에서 그린 〈스탈린그라드〉와 소련의 입장서 묘사한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미국 일본 간의 태평양 이오 섬의 전투를 미군입장에서 본 〈아버지의 깃발〉과 일본의 시각으로 묘사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균형 잡힌 전쟁사를 제공한다. 또한 3차 페르시아 전쟁은 육상에서의 전투를 그린 영화 〈300〉과 해전을 그린 〈300: 부활의 제국〉을 통해 ‘하나의’ 전쟁사로 완성되고, 2차 대전 당시 처칠의 다이너모 철수작전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는 영화 〈다키스트〉를 보면 전쟁배경과 이면사(裏面史)를 읽을 수 있다. 이 같은 영화들의 다양하고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접근 방식은 전쟁사의 객관성을 담보해 준다.
#3. 50편의 전쟁 영화에서 찾는 역사의 맥락과 교훈
이 책은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총 50편의 잘 만들어진(well-made) 전쟁영화를 엄선했다. 이 영화들을 통해 전쟁의 시대적 배경과 발발 원인 및 결과, 그리고 전쟁영웅들의 족적과 메시지를 되새겨 볼 것이다. 전쟁영화를 통해 세계전쟁사의 지형도를 그려보고, 그 속에서 역사의 맥락과 교훈을 찾아보는 것이 이 책의 출판 목적이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다. 청동기 시대 트로이 전쟁부터 21세기 미국과 아랍세력 간의 이라크 전쟁까지를 신, 제국주의, 나치즘, 이념, 민족주의, 평화 등 6개의 중심어로 전쟁영화를 구분해 접근했다. 특히 ‘평화’는 한국 전쟁사를 보는 키워드로서,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열자는 취지에서 따로 단락을 마련했다. 6개의 중심어로 된 각각의 첫 장엔 시대 사회상 등 전체적인 역사 지형(맥락)을 기술했고, 본론에 가선 50편을 분류해 영화 속 전쟁사를 기술했다.
이 책은 대부분 실존 인물인 전쟁 영웅들이 말한 감동적이거나 작품의 메시지가 담긴 대사를 각 영화(전쟁)를 기술하기 전, 맨 앞면에 소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고, 영화에 따라선 전쟁의 전술 및 전략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3. 숨겨진 보물, ‘세계 전쟁사 연표’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전쟁영화로 그린 ‘세계 전쟁사 연표’다. 다른 역사서 부록에 항용 나오는 세계사 연표를 전쟁영화로 그려 본 것이다. 영화로 전쟁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기자 출신의 저자가 특유의 꼼꼼함으로 기록해 낸 ‘세계 전쟁사 연표’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 가치가 있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던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굵직하게 세계사의 단편에 기록됐던 전쟁들의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역사의 속살에 접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세계 전쟁사와 세계 영화사의 만남이다. 세계 역사의 큰 줄기를 바꾼 전쟁을 세계 영화사에 오래 남을 문제작으로 다룬다는 것은 역사인문학과 문화예술학의 조우 다름 아닐 것이다. 이 말은 E.H.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고증학이 아닌 해석학으로 생각한 것처럼 세계 전쟁사를 세계 영화사로 재해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