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보라의 불안과 초조
펜은 바람 위에다가 너를 써 갈기며 달아난다.
질주하라. 질주해!
그곳에 너는 없고,
물보라, 물보라.
걸음을 옮기려 들 때마다 고꾸라지길 반복하는 멧닭만이 있다.
-「물보라」에서
시집 『물보라』를 펼치면 스물한 편의 「물보라」가 시작되고 또 이어진다. 물보라가 ‘물결이 바위 따위에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지는 자잘한 물방울’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스물한 편의 「물보라」는 튀는 모양새가 불규칙적이라는 점에서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물방울이기에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물보라」는 하나같이 망설인다. “열거나, 열지 않거나, 선택을 어찌해야 하긴 하는데…” “네게 너는 주도권이 없는 것” 같기에, 어렵게 마음먹은 다짐은 다음 문장에서 곧바로 전복되고, 정과 반을 어지러이 헤매던 화자는 결국 고꾸라지고 만다. 채찍질하는 목소리(“질주하라. 질주해!”)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그는 어느 방향으로든 일단 달려 보기를 결심하지만 이내 넘어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불안하고 초조하여 끝없이 움직이되 곧장 넘어지는 물보라. 우리의 삶을 머나먼 곳에서 비춰 본다면, 그 양상은 어쩌면 물보라의 그것과 닮아 있을지 모른다.
■ 불시에 튀어 오르는 기억
너는 할 일을 마쳤고, 네가 썼던 글이 너를 기억하려 든다; 밀려가는 파도 있을 것이니, 밀려오는 파도 있을 것이라고. 당연한 것만 말하고 싶고, 당연한 것이라도 말하고 싶다고.
제발.
다 옛날 일이다.
다 옛날 일인데.
-「「물보라」」에서
물보라의 불규칙성, 무작위성은 기억의 속성과 닮았다. 불시에 떠오른 기억이 하루를 덮쳐 올 때마다 우리는 그것에 꼼짝없이 사로잡히고 마는데, 이 사로잡힘은 일생 내내 지속되는 하나의 숙명과도 같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은 뿌연 안개처럼 흐려지기도 하지만, 머릿속에서 거듭 재구성되며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드러낸다. 그리고 물보라처럼 무작위로 우리를 급습하는 기억은 대개 슬프고, 고통스럽고, 하염없이 애틋하다. 스쳐 지나간 사람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 꿈이 많았던 사람들, 나의 거울과도 같았던 사람들은 시인으로 하여금 그들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럴 때면 내가 기억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썼던 글이 너를 기억하려” 드는 것만 같다. 화자는 자신의 기억이 정확한지 계속해서 의심하고 다시 쓰면서 튀어 오른 물보라를 오래도록 바라보려 한다.
■ 늘려 놓은 시간 안에서 오래도록 바라보기
너는 거울을 납치하여 등에 업고 날아오른다. 너는 물구나무 한다. 네 긴 머리카락이 손잡이처럼 흔들린다. 세상이 뒤집히고 열차는 순환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11月 9.7日」에서
불확실한 기억을 보다 정확하게 세공하는 일에는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억은 희미하고, 그것이 우리를 찾아오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기에 시인은 시간을 무한히 늘려 기억을 보다 자세히 관찰하고자 한다. 11월 서른 개의 하루 사이사이 박지일은 ‘9.7일’과 같은 중간 날짜를 끼워 넣는다. 그러자 11월은 60일이 된다. 60일이 된 11월은 어쩌면 90일, 120일로 무한히 늘어날 수도 있다. 시간을 무한히 늘리는 행위를 통해 박지일은 물보라의 방울마다 스며 있는 기억과, 기억이 품은 슬픔과 그리움을 관찰기를 쓰듯 자세히 기록한다. 이것은 시인이 과거의 기억을 잘 다스리고 소화하여 현재를 기꺼이 살아 내려는 분투의 한 방식이다. ““생각”보다 살아 냄이 실행되어야 한다. 그 고투의 기록이 이 시집이다.”라는 채호기 시인의 말처럼 시집 『물보라』는 현재에 겨우 존재하는 한 사람의 생존 일지와도 같다. 박지일이 기록해 낸, 물방울만큼 작고 자세한 슬픔들은 우리가 각자의 슬픔을 다루는 데 있어 좋은 참고서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