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로 원서 번역은 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건이 있다.
1993년 프랑스에서 막 귀국했을 때 박사학위 논문을 복사본으로 만들어 교수님들께 드리며 귀국 인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프랑스어로 작성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학위를 한 사람들의 영어로 된 논문보다 불리한 상황이었다. 지도 교수이신 조석준 교수님께서 한글로 번역해 출판을 하라고 조언해 주셨고, 유명 출판사가 거부하는 가운데, 고맙게도 금방 창업해 일이 별로 없었던 장원출판사가 출판을 맡아 주기로 했다. 원저자가 본인이고, 한국어가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번역한 원고를 보면 도대체 원어의 맛이 없어지고, 내용이 별볼일 없이 초라해 보였다. 고작 6년 파리에서 프랑스어을 배우겠다고 이를 악물고 가급적 한국말 안 쓰고 버틴 것이 한국어 능력도 다 잃어버렸다는 것인가. 마침 인하대 김영민 교수님께서 번역 원고를 읽고 깨알같이 고쳐 주셔서 겨우 출판을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나는 절대로 번역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제임스 페리(James L. Perry) 교수님이 한국에 와서 진지하게 이 책의 번역을 부탁하면서 큰 고민이 생겼다. 페리 교수님은 내가 인디애나 퍼듀대학(IUPUI)에 연구년으로 머물던 2005년 인디애나대 인디애나폴리스 캠퍼스 부학장이었는데, 내 연구실 맞은 편에 연구실이 있어 자주 보면서 미국의 대학 및 미국 사회를 알게 해 준 인연을 맺게 된 후 특별한 사이가 됐다. 페리 교수님은 그 무렵에 공공봉사동기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고, 아메리코(AMERICO)라는 단체의 연구 용역을 의뢰받아 공공봉사동기를 처음 측정해 보는 시기였다.
그 후로 공공봉사동기는 행정학 분야에의 중요한 개념으로 확산되고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개념, 그리고 측정 도구가 생기니 엄청난 양의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이론 발전의 과정을 가까이 지켜보는 특권을 누렸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한국 등 전 세계 연구자의 관심거리이고, 신행정학 이후 가장 인기 있는 행정학 이론 중의 하나가 됐다.
이제 20여 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연구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공공봉사동기이론의 창시자인 페리 교수님이 이 이론적 개념을 가지고, 조직관리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내놓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큰 의미다.
철학적·이론적 원칙으로부터 시작해 이론적·경험적 측면에서 개별 연구들이 어디까지 왔으며, 어떻게 쟁점이 됐는지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즉, 공공봉사동기를 인사행정론에서 쓰는 단순히 하나의 개념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각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동시에 이를 아우르는 보편적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행정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공공봉사동기가 공사조직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 무의식의 세계, 잠재력인 세계까지 포함한 시각에서도 조명하고, 실무자들에게 도움이 될 구체적 추진 전략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공공봉사동기의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까지 설명한 균형 잡힌 서술이 이 책의 특색이다.
특히 신공공관리론에서는 경제적 인간, 즉 개인 차원에서 보는 이기적 동기를 본다면, 이 책에서는 오히려 조직(집단)적 차원에서 이타적 혹은 친사회적 차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국 행정문화에 더 적절한 설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개인 단위의 성과관리보다는 조직 차원의 성과관리가 더 행정의 효과성에 기여한다는 논리도 제시하고 있고, 또한 과거 관료제의 병폐로서 관료제를 비판하기에 그쳤다면 오히려 관료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만족스러운 행정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측면까지 논의를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단순히 공공봉사동기 개념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 사고의 지평을 넓혀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페리 교수님이 이 책의 번역을 부탁한 것은 몇 년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지체돼서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 마침 이진수 교수님과 오윤이 박사님이 꼼꼼히 번역을 해 주신 덕분에 매우 질 높은 번역서가 됐다고 자부한다. 번역 과정에서 어려운 문장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행정대학원 임수진 학생에게도 감사한다. 감수자는 영어 번역체를 한국어로 읽기 쉽게 의역하는 정도의 미력을 더했을 뿐이다.
포르투갈어를 비롯해서 스페인어, 중국어 등 여러 언어로 이 책의 번역서가 나온다는 측면에서 한국어 판이 가지는 의미가 더 크다.
행정에 관심을 갖게 되는 학부 초년생뿐만 아니고 대학원생, 박사 과정까지 폭넓은 독자층에게 균형되고 흥미로운 연구 경향을 짚어 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책이다.
행정학의 인사행정 측면에서 본 행정학의 재조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쪼록 널리 읽혀서 한국 행정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년 11월
옮긴이들을 대표해서
감수자 임도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