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하라다 히카 신작 소설
서점 리스본 · 땡스북스 추천!
맛깔나는 음식으로 더욱 풍요로운 헌책방 거리
실제 진보초의 유명한 식당과 음식을 경험하는 즐거움
『헌책 식당』은 『낮술』 『우선 이것부터 먹고』 『도서관의 야식』 등으로 맛깔나는 음식과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온 하라다 히카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이번에는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로 알려진 도쿄 진보초에 자리한 작은 서점 ‘다카시마 헌책방’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루아침에 헌책방 주인이 된 산고 할머니, 도쿄에서의 모든 게 처음인 산고 할머니를 돕는 대학원생 미키키를 중심으로 책방 위층의 ‘츠지도 출판사’, 철도 서적만 전문으로 다루는 옆집의 ‘시오도메 서점’, 진보초 거리에 어울리는 블렌딩 커피를 파는 ‘북엔드 카페’의 사람들과 책방을 찾는 다양한 손님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네. 서점들이 전부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렸네요. 가게 앞에 빼곡히 진열된 헌책만 봐도 갖고 싶은 게 자꾸 눈에 띄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가게별로 특색이 있더군요.”
“맞아요, 헌책방은 저마다 스타일이 가지각색이니까요.”
“오래된 책을 늘어놓았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 아닐까요? 그것 말고는 모든 게 다 달라요. 가게의 규모, 책장의 진열 방식이나 조명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고, 무엇보다 어떤 책을 선별했는지에 따라 헌책방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요. 이를테면 약간 오래된 희소본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사와구치 서점의 이층과 게야키 서점을 같은 분야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본문 306p)
본디의 비프 카레에는 큼직한 고기가 들어 있다. 밥에는 치즈가 뿌려져 있고, 따로 감자 두 알과 버터가 곁들여진 구성이다. 향이 진한 짙은 갈색의 카레를 소스 포트에서 작은 국자로 떠 밥에 얹을 때의 그 설렘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한입 먹자마자, 아 역시 오길 잘했다, 하고 생각한다. 입에 닿는 느낌이 순하고 부드러워 마치 비프 스튜를 먹는 것도 같지만 곧 반전이 닥친다. 실은 그 속에 향신료의 매콤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맛있어! 마음속으로 외쳤다. 역시 진보초의 카레 챔피언답다. (본문 87p)
하라다 히카의 작품에서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산고 할머니와 미키키는 책방을 보면서 교대로 밖에 나가 점심을 사 먹고 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와 끼니를 해결한다. 그러면서 틈틈이 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심지어 테이블과 의자를 내주고는 자신들의 음식을 함께 먹자고 권한다.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초밥집의 게누키스시(조릿대 잎으로 감싼 초밥), 진보초 거리 최고의 비프 카레, 어린이책 전문 북카페에서 파는 따끈파삭한 카레빵, 튀긴 면에 소스를 부어 먹는 방식의 독특한 야키소바, 그리고 문호들이 사랑했던 시원한 맥주까지. 이처럼 하라다 히카가 세심하게 요리해내는 이야기는 당장이라도 재미있는 책과 맛있는 음식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픈 의욕을 일게 한다. 혹은 잊고 있었던 책이나 음식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나만의 책과 음식 이야기를 써보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다양한 의미로 더는 배고프지 않다.”
책 읽기의 맛, 따뜻한 한끼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
다카시마 헌책방을 찾는 이들은 직업도 취향도 사고방식도 다르지만 다들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책방 일을 좋아하지만 논문에는 진척이 없는 국문과 대학원생, 빨리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싶어하는 출판사 마케터, 글 쓸 의욕을 잃은 소설가 지망생, 수많은 요리책을 봤지만 전혀 실력이 늘지 않는 주부, 실직 후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책을 찾고 있는 중년 남성까지.
“아뇨, 그런 책을 찾는 게 아니에요. 배운다기보다 기분전환이 될 만한 거라도……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 책이라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겠네요.”
“저, 그렇지만 제가, 돈이 없어요.”
그 말을 하고서 그는 흠칫 놀라 숨을 삼켰다. 돈도 없으면서 책방에 왔다고 여길까봐 걱정한 것일 테다. 나는 그 소리는 못 들은 척했다.
“괜찮아요, 원하는 만큼 보세요.”
그야 이 책방은 오빠의 것이고…… 책도 전부 오빠 것인걸,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래는 나도 돈이라곤 한 푼도 없었다. (본문 158p)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 말에 따르면, 그는 대학 시절부터 틈틈이 소설 투고를 시작해 현재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소설을 계속 쓰고 있다고 한다. 첫 소설이 최종후보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곧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또 주변 사람들도 그를 그런 식으로 대해서 왠지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도 없는 모양이다. 산고 할머니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 전까지 보였던 자의식 과잉의 작가 지망생 청년은 사라지고, 조금씩 자신감을 상실해가는 길 잃은 어린양으로 보이기도 한다.(본문 229p)
책방 주인이 되는 걸 두려워했던 산고 할머니는 책방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그때마다 떠오르는 책들을 추천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책방 일의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곁에서 할머니를 도우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미키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서점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기 시작한다. 이처럼 책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 서점가와 그곳에 언제나 열려 있는 상냥한 헌책방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책과 음식, 이야기와 사람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끈끈하고도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