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임재근·정성일의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의 발간이 무척이나 반갑다. 저자 중 두 분과는 나름 깊은 인연이 있는 처지이기에 더더욱 반갑다. 임재근 박사는 민간인 학살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분야의 보기 드문 연구자이지만, 대전 지역에서 근 20년 시민활동가로 살아오다가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아예 단체를 만들어 살림까지 맡아하고 있다. 나 역시 연구자이지만 단체활동에 많은 힘을 쏟아온 처지라 임재근 이름 석자만 들어도 마음이 짠하다.김선재 위원장은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 내가 책임편집인으로 있는 반헌법 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에서 개최한 2016년 제1회 반헌법 행위자 웹콘텐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작품의 주제는 「대전현충원 묘비명」으로 대전현충원의 반헌법 행위자들을 아주 충실히 조사한 수작이었다. 정성일 팀장까지 필자 세 사람은 모두 KAIST 출신의 과학도였다. 그런 특별한 경력을 가진 세 사람이 모두 대전 지역의 진보진영에서 밑바닥 활동을 하면서 이런 훌륭한 책을 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고맙기 짝이 없다.원고를 받아보고 쭉 읽어가면서 느낀 점은 필자 세 분이 정말로 대전과 대전현충원을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서울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대전현충원을 접하게 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김창룡 등 친일과 독재의 흑역사를 갖고 있는 자들의 묘를 대전현충원에서 이장해야한다는 기사 같은 것들이었다. 더구나 「대전현충원 묘비명」으로 상을 받은 김선재 위원장도 필자로 참여하고 있어, 책의 내용은 당연히 친일과 국가폭력과 독재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이 주를 이룰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나 역시 강연이나 수업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모순으로 백범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곽낙원 지사와 백범의 큰아들 김인 지사의 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백범 암살의 배후였던 김창룡의 묘가 자리 잡고있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거론했었다.《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는 이런 부정적인 사례보다는 나라를 찾기 위해 몸 바쳤던 애국지사들, 제주4·3 사건 당시 총살 명령을 거부했던 용기 있던 경찰과 광주항쟁에 대해 유혈진압 명령을 거부했던 양심적인 지휘관들, 세월호 사건 당시 희생된 선생님들, 그리고 어디든 달려가 사람들을 살리고 떠난 소방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군 복무 중 녹화사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분들의 이야기도 여러 편 담겨있다. 군 의문사 희생자들의 묘를 대전현충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한 발씩 한 발씩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국민 내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해 희생된 분들도 같이 모셔져야하는 공간이다. 대전현충원에 묻힌 10만 여분들 중에 사연없는 분들이 어디있으리오만은, 책 제목의 ‘묻힌’은 꼭 땅에 묻힌 것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버린 이야기를 끄집어냈다는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온다.《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를 손에 들고 나부터 다시 한 번 대전현충원을 찾아야겠다.- 한홍구(성공회대 석좌교수,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