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는 유치원에서 뛰놀며 살아가는
어린 동물에 대한 첫 번째 책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동물은 새끼들이다. 즉, 성체보다 새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것은 언제나 사실이다. 새끼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부는 죽게 되고, 남은 일부가 비로소 성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끼 동물에 대한 연구는 한없이 부족하다. 새끼 동물은 발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동안 인간이 성체의 동물만을 온전한 생명체로 인정하며 연구해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어린 동물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나 탐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린것들의 거대한 세계》는 오직 ‘어린 동물’만의 특성과 성장을 담은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 대나 스타프는 해양생물학자로서 ‘아메리카대왕오징어’라고 알려진 훔볼트오징어를 중심으로 무척추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그녀는 자연 발생한 훔볼트오징어의 ‘알 덩어리’를 기적적으로 발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의 새끼 동물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책에서 포유류, 조류, 파충류, 곤충 등 종을 가리지 않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탄생부터 인간의 사춘기에 해당하는 유치자 시절까지의 생태와 생존에 주목한다. 어미가 남긴 특별한 침전물을 통해 어릴 적에 소화 능력을 갖추게 되는 쇠똥구리의 기막힌 시스템, 1980년대 초반 27마리였던 캘리포니아 콘도르가 504마리까지 늘어날 수 있었던 양부모 새의 노력, 17년 주기 매미 중 가장 큰 무리인 ‘브루드 10’의 2021년 대규모 우화 현장 등 《어린것들의 거대한 세계》에는 다른 과학책에서는 보기 힘든, 지구에서 갓 태어나 맹렬하게 살아가는 여러 유아 동물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죽지 않고 살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것. 이 자연의 섭리와 이치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알 시절부터 지켜지고 있다.
몰랐거나 혹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새끼 동물의 기발한 생존법
천인조는 긴꼬리단풍조의 둥지에서 기생하여 자란다. 남의 둥지 안에 알을 몰래 넣고 부화시켜 새끼를 키우는 이른바 ‘탁란’을 하는 종이다. 이 두 종의 성체는 전혀 다르지만, 놀랍게도 새끼 때의 입은 매우 닮았다. 천인조가 긴꼬리단풍조 부모를 속여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어릴 때만 입이 같은 무늬로 진화한 것이다. 호주 뻐꾸기 중에는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버릴 것에 대비해 알이 둥지와 비슷한 갈색으로 진화한 종이 있는가 하면, 숙주 새끼와 꼭 닮은 새끼로 부화시킨 종도 있다. 심지어 숙주의 어린 새 울음소리를 똑같이 흉내내 숙주 부모를 부르는 종도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청개구리 알 무리는 포식자인 뱀이 접근하기 시작하면 평소보다 이틀 정도까지 일찍 부화해 ‘도망’치고, 얼룩상어 배아는 굶주린 포식자를 감지하면 얼어붙은 듯 정지한 채 숨을 참는다.
《어린것들의 거대한 세계》는 흥미로운, 그러나 매우 진지한 각 종의 생존 전략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각각의 동물이 그들 고유의 방식대로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한 그들만의 질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는 생물과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로 다가온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당당한 주체로서의 어린것들
생명체 초기 단계를 연구하는 과학을 ‘발생생물학’이라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발생생물학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떻게 세상과 맞닿아 있는 학문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요한 사실들을 자연스레 건넨다. 어린 생명체는 아직 성체가 되지 않은 무능력하고 미숙한 개체가 아니라, 어엿한 생명의 주체로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들은 성체가 되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생태계의 또 다른 참여자라는 것.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유연하게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면서 종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능동적 주체라는 것. 그리고 도롱뇽의 배아가 바다 조류의 도움으로 숨을 쉬고, 밀웜의 플라스틱 소화 능력이 인간에게 이로움으로 작용할 수 있듯, 모든 종은 어릴 적부터 정교하고 기묘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기에 세상의 모든 어린 개체는 똑같이 귀하고 꼭 필요하다는 것.
인간뿐 아니라 수많은 동물도 건강이나 수명, 생존에 대한 도전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 도전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따라가면 어릴 적에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다거나 불균형적으로 자원을 공급받았던 문제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동물은 좌절하지 않는다. 따뜻한 심해 해저 틈인 열수분출공에서 알을 품고 있던 수백 마리 문어가 스트레스를 받자 자취를 감추고,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자 바다달팽이 유생은 서식지를 서서히 옮긴 것처럼, 눈앞에 닥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한다.
이제 우리는 주체적인 한 생명체로서 어린 동물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어야 한다. 그들이 변화를 잘 인지하고 적응하며 만들어가는 세계를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어린 동물을 키우기 위해 지구라는 유치원을 돌봐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세상은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