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시고, 짜고, 쓰고, 매운 맛의 직접적인 감각 너머
단순하지만 섬세하고 정교하게 끌어올리는 ‘맛의 멋’
백지혜 요리의 풍미는 어떤 특정 재료를 사용하는 데서 오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재료 손질법이나 조리법의 한 끗 디테일 차이 등 여러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를 통해 입에 넣자마자 느껴지는 달고, 시고, 짜고, 쓰고, 매운 직관적인 맛 너머의 섬세하고 정교한 풍미가 탄생한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각각의 요리를 소개하는 인트로 글 부분에 최대한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실으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보다 친절하게 ‘풍미’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편지이자, 어느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레시피를 개발했는지 혹은 이 요리의 풍미 포인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안내이다. 이를 먼저 읽고 나서 레시피를 차례로 따라 요리해본다면 레시피 개발자의 의도에 더욱 가까운 음식에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레몬 대신 시판 레몬즙을 사용하면 안 되는지, 올리브유는 어떤 제품이 좋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어떤 때 사용해야 하는지, 소금은 종류에 따라 용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온/냉장고/냉동고에 늘 구비해두면 좋을 재료들은 무엇이 있는지, 흑후추와 백후추는 각각 어떻게 구분해서 사용하는지 등 다년간 진행해온 쿠킹 클래스에서 자주 받은 질문을 토대로, 부엌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궁금해할 만한 질문에 대한 친절한 답변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수프’ ‘차갑게 먹는 음식’ ‘따뜻하게 먹는 음식’ ‘밥과 면’
네 가지 구성으로 제안하는 침샘 폭발 채소 요리
『풍미 마스터 클래스』는 총 네 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수프’, ‘차갑게 먹는 음식’, ‘따뜻하게 먹는 음식’, ‘밥과 면’. 보다 실용적인 구성으로 필요한 상황에 맞게 골라 먹거나 여러 가지 조합으로 한상 차려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소개된 요리에서 세 가지 혹은 다섯 가지 음식을 골라 집에서도 충분히 코스 요리처럼 구성해볼 수도 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처럼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요리들이지만 모든 음식에서 “나야, 풍미야.” 하며 입안 가득 축제가 벌어진다. 나 혼자 먹는 한 끼를 위해서도,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나눠 먹는 상차림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중 첫 번째 파트 ‘수프’는 저자가 아침에만 여는 수프 가게를 차릴 계획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만큼 다양하게 개발한 수프 레시피 중 엄선했다. 여기 수록된 일곱 가지의 수프 레시피는 각기 다른 풍미의 매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수프 하면 경양식집에서 먹어본 옥수수 크림 수프, 양송이 수프 정도만 알고 있던 사람에게는 실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다채로운 요리 한 그릇 그 자체다. 흥미로운 다국적 감칠맛은 물론이고 질감도 다양한 수프 한 그릇 한 그릇이 백지혜만의 풍미 노하우를 집약하여 보여준다.
‘차갑게 먹는 음식’ 파트에서는 샐러드를 시작으로 토르티야 칩을 곁들여 먹는 초당옥수수 살사, 구운 채소 마리네이드, 비트 후무스, 시칠리아식 카포나타 등의 요리를 소개한다. 이 책의 특징은 평소에 흔히 접할 수 없는 레시피로 만든 창작 요리가 많다는 것인데, 혹여 들어본 요리라 하더라도 전신이 되는 레시피 원형 그대로 조리하는 것이 아닌 백지혜만의 해석을 통한 특별한 킥이 꼭 포함되어 있다.
‘따뜻하게 먹는 음식’ 파트에서는 가수 장민호가 방송 프로그램 〈편스토랑〉에서 허가를 받고 선보였다는 ‘건미역 배추 전골’을 비롯하여, 토마토 프리터, 김치 프리타타, 레바논식 매운 감자, 바냐 카우다, 새송이버섯 스테이크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저자의 SNS에 레시피가 공개되어 있었던 건미역 배추 전골은 방송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인증이 쏟아졌다. 책에서는 느타리버섯과 만가닥버섯을 제안하고 있지만 각자 취향에 맞는 다른 버섯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만큼 각기 다른 버전의 건미역 배추 전골이 탄생했다. 조리법도 초간단한 데다가 조리 시간도 단 15분이니, 찬바람 불 때 안 해 먹어볼 이유가 없다.
‘밥과 면’은 한국인의 심장 같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토마토 냉국수부터 유부 소보로 소바, 건두부면 오이 냉채, 부추 잡채와 우엉 뢰스티, 크리미 버섯 리소토, 들기름 묵은지 솥밥 등 다국적 면 요리와 밥 요리의 향연이 가장 든든하게 빛을 발한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묵직하지는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맛과 기분 좋은 포만감을 선사하는 백지혜만의 풍미 노하우가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사진 그 이상의 사진, 정멜멜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아름답고 생생하게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 재료 콜라주 ‘채소힙’
『채소 마스터 클래스』로 호흡을 맞췄던 정멜멜 포토그래퍼와 이번 『풍미 마스터 클래스』에서도 다시 한번 함께했다. 요리의 작은 질감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정서가 묻어나는 정멜멜의 섬세한 사진은 그냥 단순한 사진 그 이상이다. 요리책이지만 펼치는 순간 넋을 놓고 일단 감상하게 되는 매력의 요리 사진들은 물론이고, 이번 『풍미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한 가지 포인트가 더 있다.
바로 각 요리에 쓰인 기본 채소와 풍미의 킥을 완성하는 주요 재료의 콜라주 작업이다. 재료 하나하나 초근접 촬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포착했고 그것들을 각 요리마다 한 페이지에 모아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배치했다. 이 역시 정멜멜의 손끝에서 모두 한 땀 한 땀 탄생한 하나의 예술 작품들이다. 정멜멜은 촬영은 물론이고 콜라주 작업에도 상당한 애정을 쏟으며 공을 들였다. 이로써 우리는 실체가 없는 ‘풍미’를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 것처럼 선명하게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소장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는 『풍미 마스터 클래스』만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이자 새롭게 탄생한 ‘채소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