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진작 떠날걸.”
오래된 꿈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정한 사람과 함께 떠난 탄자니아 신혼여행기
당연한 얘기지만, 신혼여행을 가려면 우선 결혼부터 해야 한다. 비혼 가구가 점점 늘어가는 이 시대에 작가는 결혼을 선택했다. 왜? 뭐든 해보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영 아니다 싶으면 서로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면 되니까. 그럼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 작가가 내세운 조건은 하나다. 아프리카에 함께 신혼여행을 가줄 사람. 그런데 왜 아프리카로 가고 싶지? 일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 사륜구동 지프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머릿속이 복잡할 때 푸른 바다에 풍덩 뛰어들 수 있는 곳.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아프리카니까. 이 꿈을 오래도록 품어왔던 작가가 “신혼여행은 아프리카로 가자.”는 말에 흔쾌히 “그래.”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 책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여성이, 아프리카로 신혼여행을 가겠다는 오랜 꿈을 이루는 이야기다. 결혼도 아프리카 여행도 현실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생각하고 먼지 쌓인 꿈으로 남겨뒀다. 하지만 아프리카 신혼여행을 제안했을 때 흔쾌히 찬성하는 사람과 함께하게 되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면서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탄자니아라는 한 나라로 좁혀졌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 중 비교적 치안이 좋으면서, 위에서 말한 조건들에 맞는 나라니까. 작가는 그곳에서의 신혼여행을 솔직하고도 유쾌하게 풀어낸다.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여행은 더 짜릿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떠나도 여행에는 늘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긴다. 이 신혼여행도 그랬다. 첫 일정인 사파리 투어에서부터 현지 여행사의 사장은 약속했던 쌍안경 두 개 중 하나가 망가졌다며 한 개만 내준다. 그런 데다 거스름돈 액수까지 교묘하게 속인다. 팁 때문에 현지인 가이드의 마음을 상하게 할 뻔하기도 하고, 고장 난 수상 스키 때문에 현지인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탄자니아 신혼여행은 마냥 낭만적일 줄 알았는데, 일정은 너무 빡빡하고 일정을 마치고 몸을 뉠 숙소 침대에는 모래 먼지가 가득하다. 이렇게 현실이 된 꿈과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여행의 짜릿함은 무지에서 온다고 말한다. 고급 호텔에만 몸을 맡기고 편하고 익숙한 것만 찾는다면 탄자니아와 한국이 뭐가 다르겠는가. 온라인 어플로 한 번에 해결하는 대신 하나하나 직접 묻고 찾아내고 얻어내면서 작가는 희열을 느낀다. 짜증스럽게 느껴지던 흥정에도, 탄자니아 사람들의 느긋함에도 익숙해진다. 2주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인데도. 이런 저자의 낙관적인 태도가 독자들의 마음까지 열어준다.
때로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더 넓은 세상을 열어준다
그렇게 직접 묻고 대화하면서 여행에 필요한 것을 얻다 보니, 현지 사람들과 말을 섞고 잠깐이라도 마음을 나누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가끔은 근사한 관광지보다 현지인 친구 한 명이 더 넓은 세상을 열어준다고. 탄자니아에는 아직 관광업과 농업 외에는 제대로 된 산업이 없다. 많은 젊은이들이 길에서 관광객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눈앞의 풍경을 즐길 여유도 없을 정도로 달라붙는 그들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전통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마사이족도 현대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의 상황을 직접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가는 자신과는 다른 삶, 더 다양한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신혼여행에서 작가의 세상을 더 넓혀준 사람들은 탄자니아 현지인들뿐만이 아니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젊은 네덜란드인 커플과는 결혼과 육아, 일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동거가 보편화되더 있고 동거 커플도 결혼한 커플처럼 법적인 보호를 받는 유럽에서도, 커플들은 아이를 낳는 게 좋을지, 낳지 않는 게 좋을지, 가정생활과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고민한다. 신혼여행 후의 긴 결혼 생활을 앞둔 작가 부부에게 이들과의 대화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남겼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의 여행은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이 열어준 새로운 세상을 남긴다.
동물의 왕국인가, 막장 드라마인가
사파리 차 1열에서 직관하는 야생의 세계
여행에서 만나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탄자니아 신혼여행을 계획하면서 기대했던 대로, 작가 부부는 사파리 자동차를 타고 초원 곳곳을 누비면서 야생의 세계를 만난다. 짝짓기를 하는 멧돼지 커플 사이에 제3의 멧돼지가 나타나면서 막장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한가하게 낮잠이나 자면서 암사자가 사냥한 먹이나 받아먹는 수사자는 ‘백수의 왕’이라는 멋진 이미지를 산산이 박살 낸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야생 동물들의 성생활에 남편과 킥킥 웃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요절복통 동물의 세계를 보고 즐거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불편해했지만, 그것이 도로 개발을 최소화해 동물의 생태를 보호한 탄자니아 정부의 혜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지켜낸 코끼리들의 거대하면서도 우아한 자태에 작가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지구가 사람만의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먼 곳에서는 동물들도 여행자에게 깨달음을 준다.
여행 후에도 삶은 계속되니까
그 삶을 함께 걸어가자
울고 웃고 떠들고 뛰놀던 14일간의 탄자니아 신혼여행은 끝났다. 이제 결혼 생활이라는 더욱더 긴 여정이 작가 부부의 앞에 놓여 있다. 출산, 육아, 노후 대비, 내 집 마련까지 새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 있다. 하지만 작가는 불안해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금 바로 이 순간 충분히 사랑하기로 한다. 마음을 가득 채운 사랑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라 믿으니까. 두 사람의 관계가, 마음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여행에서 쌓은 추억이 씁쓸한 생에 단맛을 더해줄 조미료가 될 것이니까. 그래서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만들겠다는 이들 부부의 다짐을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