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레커, 딥페이크 성폭력, 업계 내 ‘메갈 색출’…
온라인 여성혐오, 기술과 함께 진화하다
1부 ‘온라인 여성혐오, 기술과 함께 진화하다’에서는 디지털 페미니즘과 관련된 시급한 이슈들을 다룬다. 영화연구가 손희정은 1장 〈디지털 시대, 고어 남성성의 등장〉에서 사야크 발렌시아의 ‘고어 자본주의’ 개념을 원용해 한국의 ‘고어 남성성’을 새롭게 포착하고, 사이버 레커·웹하드 카르텔·디지털 여성살해 등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이 ‘돈’이 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가상의 유희가 아니라, 정확하게 신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짚어낸다. 연구활동가 이민주는 2장 〈메갈 밥줄 끊기의 역사〉에서 서브컬처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잦게 일어난 ‘메갈 색출’의 흐름을 쫓았다. ‘소비자’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집단행동이 어떻게 여성·페미니스트들을 낙인찍고 사회경제적 기반을 박탈시키는지 밝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애라는 3장 〈딥페이크 이미지는 어떻게 실제와 연결되는가〉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사이버 스토킹·개인정보 유포 등 ‘기술매개 성폭력’을 정의하고 그 실질적 피해와 의미를 다룬다. 디지털 피해는 물리적 폭력과 직접 관련될 때에야 ‘진짜 피해’로 여겨진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매개 성폭력은 온라인 공간뿐 아니라 대면 현실까지 피해를 입히고 있으며, 물리적 폭력과 비교했을 때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또 ‘음란성’ 여부,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과 같은 협소한 기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현행 성폭력 판단이 기술매개 성폭력의 실질적 피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꼬집는다. 여성학자 김수아는 4장 〈온라인 공간을 횡단하는 여성들〉에서 ‘안전한’ 온라인 공간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을 살피는 한편,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불러일으킨 디지털 행동주의의 명암을 들여다본다.
디지털 사회 속 0과 1 사이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
오늘날 여성주의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2부 ‘디지털 사회 속 여성주의 지식을 생산하다’는 기술과 여성주의 지식 생산자들이 맞물리는 지점에 집중한다. 인류학자 이지은·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은 1장 〈‘위치지어진’ 개발자들과 페미니스트 인공지능〉에서 여성 청년 개발자의 위치성에 주목해 페미니스트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AI 챗봇 ‘이루다’가 혐오 발언을 답습하는 경우처럼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이 경향성을 강화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혐오와 성차별 문제에 개입하는 페미니스트 개발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권현지와 연구자 황세원·노가빈·고민지·장인하가 함께 쓴 2장 〈성차별, 있는데 없습니다〉는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IT 개발자 문화 속 젠더 편향을 파고든다. 소프트 스킬의 탈젠더화·여성의 업무 배제 등 미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차별을 심층 인터뷰 형식으로 드러낸다. 연구활동가 김미현은 3장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스트-연구자 되기〉에서 디지털 네이비트 세대이자 청년 페미니스트 연구자로서의 활동을 되짚는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온라인 연구 웹진 〈Fwd〉의 활동 경험을 되돌아보며 실질적인 고민을 담았다. 사회학자 김혜경은 4장 〈지역 여성주의 네트워킹을 되짚다〉에서 서울 중심의 재현을 넘어, 지방 페미니스트들의 리부트 맥락을 재구성한다. ‘페미니즘 불모지’였던 전주 지역의 리부트는 친여성주의적 지방정부의 등장, 소규모 대면활동 병행과 맞물리며 전개됐다는 점에서 지역적 특징을 보여준다.
“성차별은 그것을 공정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와 언제나 함께해왔다”
차별과 맞물리는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바라보다
1부와 2부에서 드러난 문제적 상황들은 결코 자본, 즉 신자유주의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3부 ‘차별과 맞물리는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보다’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페미니즘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진단한다. 여성학자 엄혜진은 1장 〈능력주의는 어떻게 구조적 성차별과 공모하는가〉에서 능력주의를 “성적 차이를 시민의 자질과 연동해 여성을 배제적으로 포함시킨 불공정한 성적 계약의 공모자”로 정의하며, ‘공정’ 담론과 포스트페미니즘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여성학자 김보명은 2장 〈젠더 이후의 젠더 정치학〉에서 신자유주의적 안티페미니즘과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운동의 가족주의적 안티페미니즘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의 급진페미니즘을 각각 분석하고, 세 진영이 공통적으로 ‘젠더’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젠더는 개인의 정체성과 수행은 물론, 이를 구성하고 구조화하는 사회문화적 과정과 기제를 지시하는 용어이자 변혁적 도구와 같다.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젠더는 더욱 정교하게 벼려져야 할 해석의 렌즈임을 강조한다. 여성학자 김주희는 3장 〈돈 되지 않는 몸을 가진 남성-피해자들〉에서 능력주의가 금융 자산화 시대에 “지속적으로 수익을 발생시키는 자산으로서의 몸”을 가진 여성을 ‘불로소득자’로 간주해 폄훼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지점을 비판한다. 인적자본론의 허상이 드러난 상황에서 남성들의 분노는 이미 자본인 몸을 소유한 여성들을 향하고 있다. 현대 능력주의 담론은 타고난 몸에 대한 불공정 감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임금 가치가 하락하는 시대에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자본화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동에 대해 저자는 ‘여성의 몸을 자본화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비가시화되는 지점을 문제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사회학자 신경아는 4장 〈성평등한 일-돌봄 사회로〉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인구와 출산의 문제를 바라본다. 재생산 논의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출산을 회피하거나 거부할 수밖에 없다. 도구화된 한국의 저출생 대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일과 돌봄이 양립하는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