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수용과 인적 네트워크
원의 간섭과 왜구 출몰, 그리고 민생 파탄. 내우외환의 질고 속에서 뜻있는 이들은 성리학에서 새 활로를 찾았다. 저자는 “역사 속의 인간은 사회적,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이해된다”는 전제 아래 이들의 동향과 그때 사회상을 조응시킨다. 13세기 말 안향이 뚤르게로서 성리학을 수용한 것은 원에서 한화정책을 실시하고 성리학이 관학이 되며 원-고려가 밀접한 관계에 들어선 시기와 맞물렸던 것이다. 안향을 위시한 1세대 사대부들이 이제현·이곡 등에 전한 성리학은 이색을 거쳐서 정몽주·정도전·이숭인·권근 등으로 전해졌다. 저자는 특히 이색 문하의 3세대 사대부들이 성균관에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교류하면서 인적 유대가 돈독해졌음을 강조한다. 성균관 대사성 역임자들을 엮은 표는 과거제의 좌주문생관계와 성균관 네트워크가 어우러진 유학자 인맥의 실상을 한눈에 보여 준다.
현실과 이상의 충돌
성균관 학맥으로 맺어진 사대부들은 하나같이 북원 사신 영접을 반대했으나 전제 개혁이나 요동 정벌 등 대내외 사안에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성리학적 사유를 견지하였으나 현실 인식과 타개 방법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예컨대 이첨, 권근, 정도전, 남은, 최영 등은 요동 정벌에 찬성하였지만 조준, 하륜, 이성계 등은 반대하였다. 저자는 이 가운데 성리학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도 포착한다. 윤소종은 정도전, 조준과 함께 전제개혁을 주장한 개혁파 사대부이면서도 이색과 좌주문생관계를 잊지 못하여 이색 사형의 상소에 서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의멸친의 성리학적 이념보다는 현실 정리에 기울어진 사례이다.
유학자들의 구상, 새 왕조로 실현되다
고려조정 유지냐 왕조교체냐를 두고 견해차가 있었으나 유학자들의 미래 구상은 대개 하나로 수렴되었다. 저자는 그것을 “문치사회”로 명명한다. 안향, 이제현, 이곡의 군주수신론, 이곡-이색-권근으로 이어지는 경 중시의 수양론, 이제현-박상충-이색-권근의 예제 정비, 정도전의 재상정치론의 궁극적 도달점은 덕치와 예치로써 학술 진흥과 문물을 정비하는 유교적 이상향인 것이다. 정도전, 권근, 하륜, 조준 등 개혁가들은 육조직계제의 중앙집권체제와 법제 정비, 학교와 과거제를 통한 유학이념의 보급 같은 구체안을 가지고 조선시대 문치의 장을 열어 갔다.
이 책은 한국 초기 성리학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며, 실천이념으로서 성리학이 어떻게 안착되어 현실에 적용되었는가를 보여 준다. 동시에 여러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조선 건국의 치열한 과정도 알려준다. 조선왕조의 기반 정립과 성리학의 융성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 대결과 갈등, 시행착오 속에서도 문치를 지향했던 개혁자들의 끊임 없는 의지에 의해 가능했던 것임을 증명한다. 그들만큼이나 쉼 없이 역사 속 인간과 사상 탐구에 정진해 온 저자의 이 책은 국사학계의 큰 결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