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에 휘몰아친 폭풍의 한복판
주식시장에서 펼쳐진 막전 막후의 숨가쁜 공방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KT&G의 민낯
최일선에서 기록한 내밀한 금융 논픽션
행동하는 주주는 왜 KT&G를 바꾸려 하는가
FCP vs KT&G 지난 3년의 내막, 자본시장의 숨가쁜 공방 기록
KT&G 관련 소식이 연일 뉴스에 오른다. 금융가뿐 아니라 일반 주주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3년 넘게 경영진, 이사회, 행동주의 사모펀드, 국민연금, 기업은행 같은 굵직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해 엎치락덮치락 경합한다. 인삼공사 인적분할 매각, 사외이사 선임, 자사주 매입, 주주환원 같은 안건들은 갈수록 복잡해 보인다.
변호사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얼핏 복잡해 보이는 이 사안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행동주의 펀드라 불리는 FCP(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는 왜 KT&G 지분을 인수하고 경영에 참여하려 하는지,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 KT&G 경영진은 어떤 명분으로 이를 막아서고 있는지, 기업은행과 국민연금 같은 대주주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 책은 KT&G를 둘러싼 숨가쁜 공방전의 막전 막후를 내밀하게 기록한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결국 누가 주주의 편에 서 있는가, 무엇이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인가를 보면 판이 보이고 무엇이 옳은 쪽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 주식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 불리는 원인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KT&G 저평가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인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정치인 중에는 ‘한국 주가가 낮은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정학적 리스크의 끝판왕 대만보다도 쌀까? 그리고 필리핀? 필리핀보다 싸다니. 그러니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다른 나라가 존재하는 것과도 같았다. 비상장회사는 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그러나 좋은 회사도 주식 공개가 되고 성장하면 밸류에이션이 마구 떨어졌다.” (여섯 번째 이야기: 두 개의 대한민국)
“GREED IS GOOD!”
색안경을 벗고 보라. 누가 주주의 편인가
SK 지분을 사들이며 경영 참여를 요구했다가 1조 원 가까운 차익을 가지고 떠난 ‘소버린 사태’, 또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였다 매각하며 ‘먹튀’ 논란을 일으킨 헤르메스와 엘리엇, ‘기업 사냥꾼’이라 불리며 KT&G를 ‘공격’한 칼아이칸. 행동주의 펀드들은 늘 비난의 대상이다. 미국 내에서도 ‘뜨내기 협잡꾼(carpetbagger)’ 소리를 듣는다. 주주가치 제고, 경영 정상화는 다 명분이고 결국 자기 잇속만 채우고 떠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창시자로 불리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칼 아이칸의 일대기를 통해 그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또 어떻게 이익을 창출하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또 ‘일본 최초의 위임장 대결’ ‘최초의 적대적 공개매수’, ‘펀드 최초의 주주대표소송’ 같은 이력이 따라붙는 무라카미 펀드의 무라카미 요시아키 이야기도 소개한다. 일본 행동주의 펀드가 활발하게 참여한 결과, 2012년 1만 230포인트이던 일본 니케이지수는 2024년 4만 포인트를 돌파한다. 1990년 이후 최고점, 일본 주식시장의 신고가였다.
《할 말 하는 주주》는 FCP와 KT&G 공방전의 비사를 담은 책이면서도, 이렇듯 행동주의 펀드는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어떻게 주식시장을 변화시키는지, 금융시장의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필리핀보다 저평가된 주식시장
KT&G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재임 기간 동안 주가가 21% 폭락했는데도 연봉 26억 원을 받는 사장, 자사주를 ‘기부’받아 주요 주주 자리를 차지한 복지재단과 장학재단, 해외 출장 명분으로 열기구 여행을 하고 유학 중인 자녀를 만나고 여비에 출장비까지 챙기는 사외이사, 담배 도매상에게서 버젓이 호텔 로비에서 수천만 원짜리 시계를 받는 사장. KT&G에 투자하고서 FCP가 발견한 사실들이다.
특히 담배 수출이 내수를 추월했는데도 어느 지역에 얼마큼 수출해서 이익이 얼마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궐련형 전자담배에 담배시장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하면서도 KT&G의 전자담배 릴(lil)을 경쟁사인 필립모리스에 15년간 수출을 위탁하고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다. 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면서 주주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없는가?
저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참여 요구에 반발할 때 등장하는 ‘경영권’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경영권의 ‘권’은 권리(rights)가 아니라 권한(authority)를 의미하고, 오직 위임인을 위해서, 위임의 목적 범위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위임인은 바로 주주다. 그러므로 이 권한은 오직 주주를 위해서, 주주가 위임한 목적 범위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경영은 ‘특권’이 아니다. ‘임무’일 뿐이다. 주는 사람도 뺏는 사람도 회사의 주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주주’를 ‘주인’으로 보지 않는다.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주식이라는 투자증권을 보유한 소유주로 볼 뿐이다. 그래서 회사의 주인을 가리키는 ‘오너’라는 말이 따로 있다.” (에필로그: 2024년 대한민국)
치밀하고 집요하게 내부자들끼리 이어져온 대표이사 자리, 이들의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 그리고 경영진을 방어하는 법률 자문비로만 3개월 260억 원을 쓴 회사. 이 책이 처절할 만큼 KT&G의 비밀을 공개하면서도 재차 삼차 묻고 확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그러나 KT&G를 비롯한 한국 기업에서 이 절대 원칙이 왜 작동하지 않는가? 경영진과 오너가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잃어버린 20년의 이유임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주식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주가 경영진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질수록 경영진은 좋다.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어차피 연봉은 그대로다. 주주들의 관심이 생기면 점점 기대 수준이 높아진다.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은 포기하고 길들여진다. 배당을 조금만 줘도 낮은 주가에 비하면 큰 금액이다. 배당수익률이 높다고 고마워한다. (…) 그중 KT&G는 거버넌스 후진국 대한민국의 2,300개 상장사 중에서도 가히 국가대표라 부를 만한 케이스였다.” (일곱 번째 이야기: 2020년 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