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관리에 완벽한 해결책은 없을 테지만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심각한 위험을 어떻게 피했는지, 미래를 위해 어떻게 위기 관리를 시행했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현재를 미래 세대에게 잘 물려주기 위해선 공동선을 우선해야 한다. 하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하다. 나아가 현 위기를 초래한 관습적 인식과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위기 극복은 염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루터를 종교개혁으로 이끈 전방위적 위기 의식?
폴란드와 독일의 용서, 화해가 주는 교훈이란?
‘위기(危機)’는 한자어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쳐진 말로 부정적 혹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고비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병세가 악화하거나 회복하는 상태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위기’라고 불렀다. 즉 위기는 더 나빠지거나 더 좋아지는 분기점이나 변곡점 같은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
일찍이 마르틴 루터는 그릇된 관습이나 잘못된 종교적 교리를 바로잡고 믿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주창하며 ‘종교개혁’을 이룩했다. 하지만 16세기 초반 당시 유럽은 질병과 전쟁, 기근과 기후 변화로 암울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재난의 시대를 살아간 민중은 불건전하고 극단적이며 과도한 신앙적 행위로 점철되었다. 하여 루터의 위기 의식 투철한 개혁이 힘을 받기 힘들었다.
한편 18세기 말부터 다툼을 이어온 폴란드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최악의 사이가 된 후 1960년대 극적인 사죄, 용서, 화해를 이으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 상징이 1970년 12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찾아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한 사건이다. 이후 폴란드는 용서했고 두 나라는 화해를 목적으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뉴 그레이트 게임 시대, 위기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환경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은 역사를 들여다본다. 2~3세기 감염병 위기 시대에 그리스도교의 위기 대응 자세와 능력, 소빙기 시대에 일어난 자연재해와 사회적 복원력,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 참사에 대한 국가 간의 상이한 대응책 등 환경 위기 극복을 위한 역사적 사례들을 고찰했다. 2부에선 정치 위기 속에서 길을 찾으려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발(發) 전쟁들이 글로벌 위기를 가중시키는 와중에 현명한 정책적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 국내에서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행정 갈등이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 정세의 불안정을 초래했고, 접경 지역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 머문다. 3부는 성찰과 교류의 역사가 만든 기회를 엿본다. 이웃 국가 간의 적의와 증오 감정은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 공유, 미래 지향적인 화해와 치유에 무게를 두는 회복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개인·사회·국가 간 각자도생의 생존 논리가 앞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성찰과 교류의 역사를 엿보며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