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황금연필상 수상작 심사평
“심사 위원단은 만장일치로《어디서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Films die nergens draaien)》의 독창성과 상상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은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며 깊이 있는 주제를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풀어 낸 독창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2022년 가장 아름다운 책에 주어지는 대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적이고 매혹적인 책’ 황금연필상 심사평
되돌리고 싶은 순간, 그리운 추억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
“무엇보다도 네 호기심, 고집,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킨다면 넌 언젠가 네 길 위에 선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처럼, 과거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돕겠지.” (본문 중에서)
마치 공동체 가정처럼 카토와 아빠, 이웃인 코르넬리아 아줌마가 함께하는 카토네. 그러나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저마다 다른 세상에 빠져 지낸다. 열세 살 여자아이 카토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코르넬리아 아줌마의 “커피는 몸에 해롭다.”라는 잔소리에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부터 마신다. 카토는 멜랑콜리한 가을을 가장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하려고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 개발한 ‘다르게 보기 스킬’을 갈고닦는다. 다르게 보기 스킬이란 고집스럽고 똑똑하고 호기심 많은 카토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을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사로잡는 것 대신 바로 그 옆의 다른 것을 보는 것이다.
카토는 자신이 태어난 날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가 여전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죄책감이 결코 어른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임에도 마음에 굳은살이 생길 만큼 나이 든 소녀로 만든다. 카토의 유일한 친구는 꿀꿀거리는 토끼 소찬뿐이다. 카토의 아빠 하롤트는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채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다. 카토는 아빠가 빈 껍데기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엄마의 죽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몇 번 카토의 집에 들러 청소와 요리를 해 주는 이웃집 코르넬리아 아줌마는 카토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마치 엄마처럼 잔소리를 한다. 카토는 아줌마가 엄마 자리를 탐낸다고 의심하고 미워한다. 아줌마가 자기 남편을 독살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 때문에 의심과 오해는 점점 깊어진다.
이런 그들 앞에 어느 날 밝은 노란색 종이에 연분홍색 글자가 인쇄된 명함 한 장이 날아든다.
“카노 부인의 영화관
어디서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
그렇지만 당신이 언제나 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영화”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영화
준비물은 추억이 담긴 물건, 그리고 사진 한 장
언제든 불도저가 건물을 싹 밀어 버린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오래된 영화관 룩스. 빛바랜 간판, 켜켜이 쌓인 먼지, 부서진 좌석들, 썩어 가는 나무 소품들, 녹슨 필름 통이 가득한 이곳에서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카노 부인의 영화관이자 오래전 폐업한 영화관 룩스에서.
영화관 영사실에 있는 매우 오래된 영사기의 길고 굵은 전선은 수상쩍은 검은 상자와 연결되어 있고, 상영관에는 빨간색 객석과 하얀 스크린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관의 주인이자 ‘시간 여행 영화’를 발명한 카노 부인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부인이 카토의 삶에 등장하고 난 뒤 주변에서 자꾸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카노 부인은 외롭고 무료하던 카토의 삶을 뒤흔들어 생기를 불어넣고, 마침내 카토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엄마를 만나고 인생을 바꿀 열쇠를 찾게 이끈다. 카노 부인과 카토의 첫 만남은 수많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네가 할 질문이 수백 개일 거라고 했지? 하지만 난 정말 시간이 없단다. 내일은 첫 손님이 오셔서 영화관을 둘러볼 거야. 커피 좋아하니?”
“아니요.”
“좋아, 나도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의 첫 번째 임무는 너와 나를 위해 진한 커피를 내리는 거야. 아주 진한 블랙커피여야 해. 주방은 저 아래에 있어. 수도를 조금 틀어 놓으렴. 물을 오랫동안 틀지 않았으니 말이야.”
“임무요?”
“그래, 임무. 너 여기 아르바이트하려고 온 거 아니니? 나 혼자 이 엉망진창을 치우긴 어렵지. 난 저 사진들을 정리하는 일만으로도 바쁘단다.”
“무슨 사진이죠?”
“무슨 사진일 거 같니? 어딘가에서는 영화가 시작돼야 하잖아, 그렇지?”
“어디서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요?”
“똑똑하구나.” (본문 중에서)
영화관에 홀로 남게 된 카토는 ‘기밀: 접근 금지!’라는 글씨와 함께 ‘어디서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 다비드와 아르튀르 로제보털의 통나무집’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노란색 서류철을 펼쳐 본다. 서류철에는 사진 몇 장과 서류가 들어 있다. 저마다 다른 이름표가 붙은 서류철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이 영화관에서는 도대체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 걸까?
“그 상자를 제게 넘겨주실 수 있을까요?”
노신사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카노 부인에게 건넸다.
“감사해요. 금방 돌아올게요.”
말을 마치고서 카노 부인은 위층 영사실로 사라졌다.
노신사가 오렌지에이드를 찾아 들고 빠르게 한 모금씩 마시는 동안, 카토는 그를 보지 않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몇 분 뒤, 카노 부인이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올라가실까요?”
카노 부인이 말했다.
“영화가 곧 시작될 거예요.”
노신사는 주저하며 일어섰다.
“네……, 물론이죠.”
노신사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카토에게 말했다.
“맛있는 오렌지에이드 고마워요, 아가씨.”
카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곧 카노 부인과 노신사가 상영관의 붉은 가죽 문 안으로 사라졌다.
(중략)
창으로 상영관을 들여다보니, 스크린에 통나무집이 보였다. 들판에 서 있는 남자아이 둘의 윤곽이 사진과 똑같았다. ‘노신사는 아르튀르 로제보털이 틀림없어.’ 카토는 마침내 깨달았다. 1961년 사진 속의 그 남자아이. 그때보다 거의 60살이나 더 많지만, 아픈 형과 함께 있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노신사와 카노 부인은 뭘 하는 거지? 노신사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걸까? 상영관의 스크린에는 계속해서 통나무집과 두 남자아이가 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사진을 크게 확대해 놓은 걸까? 조금 더 집중해서 보려고? 그런 이유일까?
그런데 두 사람은 지금 어디 있지? 카토는 창을 통해 상영관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서도 노신사와 카노 부인을 찾을 수 없었다. 한 군데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좌석을 모두 샅샅이 훑었지만, 상영관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마법 같은 재미와 감동, 치유의 이야기
룩스 영화관의 영사기 사용법, 즉 시간 여행 영화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영사기와 연결된 검은 상자 안에 추억이 담긴 물건을 넣는다.
2. 영사기가 그 물건에서 과거의 특정한 순간을 캐낸다.
3. 가고 싶은 바로 그 순간의 사진을 영사기 구멍에 밀어 넣는다.
4. 영사기가 사진 속 과거의 그 순간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면 레버를 당긴다.
5. 손님과 함께 스크린 안으로 들어간다.
카노 부인은 영화관 상영관에 있는 스크린을 매우 특별한 물질로 만들어진 ‘개연성의 스크린’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설명한다. “저 스크린을 구성하는 입자는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지. 그리고 영사기가 기억의 적절한 형태, 시간, 장소를 가정할 수 있도록 스크린의 입자를 배열해. 그렇게 스크린은 다른 시간으로 가는 통로가 되지.”
카토는 시간 여행을 안내하는 ‘시간 주변 여행자’의 임무를 맡아 손님과 함께 스크린을 통과해 과거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카토는 열세 살을 더 먹기 전의 아빠를 발견하고 온몸이 얼어붙는다. 뒤이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신의 엄마임을 직감한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찾았던, 공원 축제에서 빛나는 미소를 띠고 있던 엄마의 사진. 그 사진이 카토의 눈앞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이유 모를 두려움에 카토는 도망쳐 현재로 돌아온다.
그 뒤 카토는 카노 부인과 함께 시간 여행을 다시 떠난다. 카토에게 주어진 임무는 통통이라는 남자아이를 지켜보는 것. 카토는 통통이를 만나 웃고 떠들고 놀며 어느새 통통이를 오랜 친구처럼 여기게 된다. 그사이 카토와 아빠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코르넬리아 아줌마가 영화관에 몰래 숨어들어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이제 카토가 엄마를 만나러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엄마의 유품인 빨간색 여름 원피스와 사진 한 장을 들고 선 카토는 과연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엄마와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아빠와의 갈등은 어떻게 극복할까?
시간 여행 이후의 삶, 카토가 꿈꾸게 된 ‘미래’
가족, 정체성, 유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판타지 소설
이 책은 시간 여행을 중첩 구조로 전개하는 탁월한 구성, 무거움과 가벼움, 우울함과 경쾌함의 균형을 잘 맞춘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판타지 소설이 지녀야 할 독창성과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2022년 네덜란드의 가장 아름다운 책에 주어지는 아동문학상인 ‘황금연필상’을 수상했다.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머릿속에 펼쳐지는 질문들의 답을 찾아 가며 이 책을 읽는다면 재미가 배가되는 것은 물론 작가의 독창적이고 경이로우며 매혹적인 상상력에 더욱 빠져들 것이다.
현재를 잘 살아가야 멋진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만한 당연한 사실이다. 이 책은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통해 그 당연한 이치를 짜릿하게 일깨우고 새롭게 들려준다. 아이들에게는 가족과 정체성, 어린 시절의 소중함을 전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어른들에게도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언젠가는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 알아채지 못한다면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똑똑하고 덜 멋진 사람일 테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네 호기심, 고집,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킨다면 넌 언젠가 네 길 위에 선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처럼, 과거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돕겠지.” (본문 중에서)
“너 이름이 뭐야?”
“카토.”
“안녕, 카토. 난 헨드릭이야.”
카토는 입을 벌리고 그 아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지만 넌 감자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카토는 자기도 모르게 팔을 벌려 남자아이를 껴안았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