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 엿보기
지난 세기였던, ‘그 시절’은 무엇일까. 이미 지나갔고, 그 시절이라 불리기에 구태여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민족이나 사회 같은 운명 공동체를 생각하면 역사일 것이고, 개인 존재에게는 잘 합성된 기억의 서사일 뿐이다. 또한, 심리적으로 환상(illusion)이면서 착각(delusion)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젊은 날’은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에게는 보편적 향유이면서 동시에 개별 존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형상화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뜨거운 열정을 품었든, 차가운 이성만을 벼렸든 불문하고 그 시기의 가치는 한 존재가 축적한 힘과 생의 지향점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어느 시대, 어떤 문화권에서든 ‘서정의 힘(진실과 미학의 가치)’을 믿고 따르는 일군의 젊음이 존재한다. 이들을 격려하고 고무하는 금언(金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G. 바슐라르는 “세계의 규모와 차원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꿈을 정말로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계를 확대하지 못하는 꿈을 시인의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또한, 199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시는 지식, 구원, 힘, 버림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적 활동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영적인 운동이자 내면의 해방을 위한 방법이다. 시는 이 세상을 드러내고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라고 선언했다. 주지하다시피 바슐라르는 시적 상상력으로 세계의 차원으로 향상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세계를 초월하거나 신의 경지로 승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이와 진실한 체험이 가득한 인간 존재의 본래 터전으로 만들자는 회유였다. 반면에 옥타비오 파스는 구체적으로 생생한 현실을 개혁하는 시인의 영적 에너지의 실체를 확신했다. 그의 ‘불타는 돌’이라는 시관(詩觀)은 세계 각지의 젊은 시인들 가슴에 그들만의 영원한 ‘불’로 옮겨붙기도 했다.
강성재 시인의 시집 『가난한 영혼을 위한 노래』는 그가 「시인의 말」에서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시절”을 되비치는 자성의 역광(逆光)이고, “시상(詩想)의 정원에 서서” 독자에게 받치는 ‘꽃다발’이다. 젊은 날의 이 ‘날것(raw image)’의 시편들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되살리는 역능(力能)이 되기도 한다.
가지 말자고 했다 더러는
가지 말라고 했다 누구는
돌부리가 비수를 품고 서 있는
그 길
가시덤불 우거지고 까마귀가
우는 날
쓰러진다고 했다
스러져 가라앉는다고 했다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는
아, 우리들의 생
누구는 가지 말라고 했다
더러는 가지 말자고 했다
가야 할 그 길
- 「서시」 전문
인용 시의 제목처럼 ‘서시’는 몇 개의 층위에서 의미를 형성한다. 첫 번째는 일련의 연작시 제작에서 그 표제의 역할을 하며 연작의 주요 내용이나 방향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두 번째는 한 권의 시집에서 책 전체의 내용을 포괄할 수 있는 시적 자세, 즉 시작 태도나 방법을 피력하는 것이 있다. 세 번째는 비유하자면 인생의 출사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마 윤동주 시인의 ‘서시’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한 시, 즉 시인의 ‘서시’는 앞에 언급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의미 사이 어디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에 “우리들의 생”과 “가야 할 그 길”이라는 선택의 조건과 담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짧은 작품에서 “가지 말자고 했다 더러는/가지 말라고 했다 누구는”이라는 내용이 반복된다. 반복은 강조다. 이 강조는 “가야 할 그 길”이 단순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일종의 ‘점지(點指)’임을 암시한다. 누에 농사에서 튼실한 것들을 고르면, 즉 사람 손이 닿으면 누에 등에 검은 점이 생긴다고 한다. 이 누에들은 잘 먹고 자라 튼실한 고치를 짓는다. 이를 삶아 실을 뽑으면 양질의 비단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누에는 삶아지기 때문에 나방이 되지 못한다. 즉 우화(羽化) 대신에 비단 명주실을 남기는 것이다. 시인의 숙명을 비유적으로 대체한 이야기다. 시인은 자신의 숙명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강성재 시인은 다른 시 「가야 한다 그 길을」에서 “땅의 하늘이신 아버지”와의 격정적인 대화를 통해 인식을 실천으로 바꾸려는 의지를 피력한다. “아버지, 넘어져서도 피어나는 꽃이 더 아름다운 법이에요 그리고 닫힌 문은 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요?”라는 반문은 항의가 아니라 선언의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김수영 시인이 일기초에 남긴 “누가 무엇이라고 비웃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라는 확신의 면모를 여기서도 엿보게 된다.
- 백인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