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온 문체, 그 웅장한 목포 박물지
〈중앙신인문학상〉과 〈목포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한 김수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포화 속 딸기는 발사된다』가 시인수첩 시인선 90번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이번 시집은 ‘목포’라는 거대한 상형에 집중하고 있는데, 특히 ‘목포 박물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목포의 역사와 그 숨은 내력, 그리고 여기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유년의 운동장이라 밝힌 목포의 수많은 ‘공간’들은 물론이고 목포가 가진 특별함과 장소성을 확장하고 강화했으며, 문명의 횡포와 전쟁으로 갈 곳 잃은 연약한 개체. 그들의 고통을 담박하게 바라보았다. 이를 증명하듯, 시인은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의 주제의식을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벼랑 끝에 내몰린 약자들의 고통과 슬픔”으로 요약하고 있다. 여기서 약자들이란 목포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살아온 삶의 모든 터전을 지칭한다.
그의 시선에 포착된 목포의 구체적인 지형도를 살펴보자. 1960년대 초까지 목포역엔 긴 하천이 있어 징검돌을 건너가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많았던 〈멜라콩다리〉, 일제가 목포의 풍성한 수산물을 수탈할 목적으로 고깃배가 많이 정박할 수 있도록 일자형이 아닌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형태로 만든 〈째보선창〉이나 버림받은 아낙네의 한이 서린 〈아리랑 고개〉 등을 비롯해 목포시 대성동 언덕길에 있던 여인숙으로, 철강업이 융성하던 1940년에 영업을 시작하여 목포의 명소가 되었으나 현대화 사업으로 헐린 〈용꿈여인숙〉, 1924년에 문을 연 모자점으로 일본인 상점만 즐비하던 목포 본정통에서 유일한 조선인 상점이었던 〈갑자옥 모자점〉 등이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이외에도 〈목포형무소〉, 〈갓바위〉,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시민극장〉, 〈고하도 목포국립학원〉 등 무척 다채로운 장소들을 작품의 한줄기로 고양시켰다.
과연 목포의 ‘특별함’과 ‘장소성’은 무엇일까. 우선 목포는 향유고래들의 유영처럼 유려한 도시다.
목포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창밖에 보이는 향유고래들의 유영, 그 지느러미를 따라 수많은 별자리들이 헤엄치며 지나간다
밤이 오면 하늘의 별자리들은 다도해에 닿아서 새로운 신생의 별자리들을 만들고
-「목포역」 부분
또한 비극의 변방이자 일제강점기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비가 오면 범람해서 돼지가 떠내려가고 사람도 함께 빠져 떠내려가던 하천엔
박길수, 소아마비로 절룩거리던 목포역 짐꾼 청소부가 있
-「안녕, 멜라콩」 부분
1980년이 되자 불도저들이 와서 째보의 얼굴을 고치기 시작했다 성형 받은 째보는 흉터 없는 얼굴로 파도를 맞고 있다 지금은 이곳이 빼앗긴 곡물을 수탈한 선창이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째보선창」 부분
이와 더불어 김수형 시인은 스스로를 “서울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문체”라고 당당히 선언한 바 있는데, 이 보기 드문 묵직한 의지는 이번 시집의 주된 정서이자 작품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태들이 하나둘씩 모여 목포는 시인의 생(生)을 개방하고 고양하는 실존적 서사로 자리매김된다.
★★
◨ 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시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A]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벼랑 끝에 내몰린 약자들의 고통과 슬픔이다. 이런 현실을 감내하게 하는 물신적(物神的) 세계와 현대라는 시간성에 주목했다. 생을 지속시키는 위대한 것들을 과거와 현재의 균열 속에서 찾았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고통을 견디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스며들어 사는 존재의 품격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안에 깃든 어둠을 응시했다. 고요히 흘러가는 말들이 보였다. 낡았어도 충분히 새로울 수 있는 것들이 보였다. 다도해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과 섬을 끼고 돌며 유영하는 어선들을 바라보았다. 역설적으로 익숙하게 품은 일상의 풍경이 가장 새로운 것일 수 있음을 말하고도 싶었다. 고향의 서사를 넓히고 여린 생명체들을 바라보았다.
나를 향한 어떤 다짐들을 버렸다. 내 안의 말을 지우고 사물들이 주는 온기를 받아 적었다.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따듯하게 보듬어 주며 자유롭게 하는 곳에 시의 자리가 놓여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Q] 이번 시집의 특징은?
[A] 목포가 지닌 묵직한 서사에 주력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상흔이 관통하는 곳이 목포(木浦)다. 일제강점기 약탈의 거점항구 역할을 하여 한때 융성했다. 목포는 과거와 현대와 미래가 뒤섞여 있다.
아직 상처가 남아있긴 하지만 목포는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낭만항구에는 질곡의 시대와 갯바람을 견뎌낸 따듯한 사람들이 있다. 걸출한 예술가들이 화수분처럼 솟아난 공간에 새로운 색채와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목포역, 멜라콩다리, 갑자옥모자점, 차 없는 거리는 모두 내 유년의 운동장이었다. 목포가 갖고 있는 특별함과 장소성을 확장하고 강화했다. 비단 내 고향만 담은 건 아니다. 문명의 횡포와 전쟁으로 갈 곳 잃은 연약한 개체. 그들의 고통을 담박하게 바라보았다. 어떤 권위나 폭력에 의해 희생을 치른 장소라면 그곳이 곧, 목포와 우크라이나 참상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Q] 나는 어떤 시인인가?
[A] 나는 서울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문체이다. 목포에 깃든 이후 나의 문체는 더 따듯하고 더 간결해졌다. 세상에 없는 색으로 이 세계를 그리는 시인이고 싶다. 행간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고 내 무의식의 극점까지 읽을 수 있는 시. 그 빈칸에서 내가 만든 무의식들이 스스로 시를 적어 내려간다.
시를 쓰기 전에 산책을 한다. 온갖 사물의 냄새에 온몸을 맡긴다. 나를 지우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나무속으로, 돌속으로, 물속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 간다. 시의 풍경에 제일 먼저 부딪히고 노이즈를 일으키는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나를 내려놓는다.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시를 쓴다. 시적 화자와 아둔한 내 모습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과감히 지운다. 밤새 쓴 시를 지운다는 건 고통스럽지만, 나를 덜어내고 최소화할 때 더 좋은 시를 만나게 되는 거 같다. 말맛을 살린 시와 그렇지 않은 시가 뒤섞여 있다.
나의 뿌리와 도약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그 틈에서 자주 넘어졌다. 도움닫기를 하는 도움틀처럼 고향은 나에게 뛰어오를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다. 큰 날갯짓으로 천 리를 날아가는 붕새처럼 자유롭고 싶다. 나는 세계의 어디쯤 날아다니다 단번에 목포항으로 되돌아오는 기이한 문장이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