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범주의 형성 과정 자체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다
≪인종은 피부색이 아니다≫는 인종, 종족성, 민족에 관한 스튜어트 홀의 사고가 거쳐 간 풍부한 발전 과정을 간결하게 압축해 보여 준다. 이러한 논의는 상당 부분 홀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해 도출된 것이다. 홀은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영국식 교육을 받은 흑인 혼혈인으로서 영국 유학 후 현지에서 자리 잡아 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했다. 홀 자신에겐 자메이카 역시 원래 ‘고향’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떠나 정착했던 디아스포라에 불과했는데, 홀의 정체성 이론은 이처럼 영원한 정신적 떠돌이 경험을 체계화한 셈이다. 그래서 인종 문제를 단순히 식민주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서 보지 않고, 인종과 피부색을 자연적, 생물학적 범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흑인’이라는 인종 범주의 ‘형성 과정’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홀은 인종, 종족성, 민족 범주에 스며든 권력관계를 정교하게 해부하면서, 어떻게 해서 이 상식적 범주들이 권력 구조와 얽혀 억압적 기능을 해왔는지, 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지 보여 준다. 한국 사회 역시 인종, 종족성, 민족 문제와 무관한 지역이 아니며, 사회 곳곳에 스며든 인종주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더 나아가 홀의 논의들은 이 책에서 직접 다룬 인종이나 종족성, 민족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한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 문제에 대처하는 데도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