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야구였다!
프로야구 원년 15명으로 창단한 해태 타이거즈는 투수가 3명뿐이었다. 대학교 때까지 투수로 활약한 적이 있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타자로 전향한 김성한은 팀 사정 때문에 타이거즈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업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프로 첫 해에 투수로서는 10승과 2.7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타자로서는 .305의 타율에 13홈런, 69타점의 성적표를 받았다. 리그 전체에서의 순위로 따져보면 투수로서는 다승 7위 평균자책점 5위였고, 타자로서는 타율 10위, 홈런 4위였고 타점은 1위였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도류’로 활약하는 오타니 쇼헤이 못지않은 기록이었다. 그 후 김성한은 ‘팔방미인’으로 불리며 1980~90년대 한국 프로야구를 풍미했다.
김성한은 군산에서 태어나 야구를 시작하고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제2전성기를 열었지만 중학교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사춘기를 깊은 방황으로 허송세월했다. 평생의 은인인 선생님을 만나 다시 야구에 집중할 수 있었고, 마침내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타이거즈의 간판선수가 되었다.
프로야구 최초로 20홈런-20도루, 30홈런을 달성했으며 페넌트레이스 MVP 2회, 홈런왕 3회, 5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1980~90년대 V9에 빛나는 타이거즈 왕조시대를 연 주역, 김성한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우리가 잊고 지내던 인생의 여러 가치와 미덕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