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는 주로 일상의 순간들이 잊혀 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감정에 집중한다. 시인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건들과 기억들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고 잊히는지를 묘사하면서도, 그 잔재로 남아 있는 감정과 흔적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상실감과 쓸쓸함은 “더욱 넓어지는 반점들”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는 한편 “모든 반점은 다 꽃, 아닌가”(「바나나」)라는 궁극의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2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시편이 주를 이룬다. 사과, 새, 자두나무, 기린, 구름, 벼락 맞은 나무 등의 이미지들이 시인의 감정과 사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끝없는 자연 순환의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시인은 인간 존재의 불안함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한다.
3부는 궁극적인 평화와 안식을 갈망하는 정서가 주를 이루는데, 시인은 실존적 위안을 찾고자 하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그리하여 그는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무엇이든 나오지 않은 적 없는/달걀들을 폭죽 바구니처럼 한 아름 들고”(「감정의 발명왕」) 이미 균열한 삶에 또 한번 날카로운 균열의 메시지를 던진다.
마지막 4부는 사랑과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시들로 채워져 있다. 시인은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이해,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어두움과 빛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연인과 연안의 어두움을 구별하”(「연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묘사함으로써 사랑의 복합적인 면모를 시적으로 풀어낸다.
시집 『리을의 해변』은 다채로운 감정의 거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조혜정은 흡사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기분을 연구하려”(「세계기분장애학회」)고 작심한 듯,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의 시편들을 우리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