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기술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았던,
첨단 과학기술을 발명한 한국인은 누굴까?
불모의 시기, 혁신을 이룬 사람들
백신, 스마트폰, 인공위성, 반도체 등 과학기술은 일상생활은 물론 국가 경쟁력과 불가분의 관계다. 첨단 기술을 발명하고 혁신을 거듭하는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선진 문물을 외국에서 들여와 퍼뜨리는 데 그쳤을까?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들의 출신 국가를 떠올리면 이는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이 책은 온갖 경제적ㆍ정치적 어려움에도 산업의 기틀이 되는 과학기술을 갈고 닦아, 마침내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린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사는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여 따라가기만 한 역사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과학사학자 송성수 교수가 발굴한 사람과 기업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우리나라의 철강이 각종 산업을 떠받치고, 한국산 자동차와 반도체, 휴대전화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재는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기술이 우주를 향하는 미래도 우연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름을 기억하는 데 있다.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혁신
부산대학교에서 10여 년간 ‘인물로 보는 기술의 역사’를 강의해 온 저자는 서양 중심의 연구와 서술에 아쉬움을 느끼고 직접 한국의 사례를 찾고 모았다. 그중에는 익숙한 이름인 최무선과 장영실부터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으로서 근대 건축을 이끌었던 박길룡, 조선 최초의 여성 양의사 김점동,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개발한 최순달 등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삼성의 반도체, 현대의 자동차, 쿠쿠전자의 밥솥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이 명성을 얻기 이전의 이야기도 담았다. 예컨대 한국의 철강 산업을 주도한 박태준이 포항제철소를 건설한 과정에서, 해외 연수팀이 일본에 가 기술자들에게 술을 사주며 기술을 습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2022년 쏘아 올린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국내 연구진이 러시아 기술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기술을 배웠다는 후일담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혁신으로 가는 지름길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는 과학기술 위인전
이 책은 한국인이 주도한 과학기술의 발전사를 조명하지만 무턱대고 그들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인물과 조직이 특수한 시대 상황 속에서 기술을 발명하고 혁신을 거듭하는 과정을 전달하면서도 ‘인물을 영웅시하는 신화에 빠지진 않았는가?’ ‘실무를 전담했지만 이름은 덜 알려진 주역이 따로 있는가?’ ‘공로와 과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등을 일관되게 묻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영실만 해도 그렇다. 강수량을 재는 기구인 ‘측우기’는 실제로는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이 즉위하기 전에 만들었지만,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오해가 퍼져 있다. 저자는 오해는 물론 측우기의 원리가 꽤 단순하다는 점을 가감 없이 밝힌다. 동시에 그럼에도 장영실의 성취가 위대한 이유와 측우기의 가치를 보는 또 다른 관점도 함께 제시한다.
이름을 아는 인물이라면 그의 혁신이 객관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 낯선 인물이라면 그의 삶과 혁신의 과정을 재미있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