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여러 얼굴
안중근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대표적인 ‘영웅’이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과 영화의 제목이 ‘영웅’인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일본에서 안중근은 일본 근대화의 영웅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암살한 ‘테러리스트’이자 ‘살인자’로 간주된다. 안중근에 대한 한ㆍ일 양국 간의 이러한 상호 대립적인 평가를 넘어 안중근이 제안한 동아시아 평화사상의 내용에 집중하고, 그것이 오늘 문명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모색하는 책이다.
일본 내에서 이례적이라 할 류코쿠대학(龍谷大学)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와 한국의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산하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간에 ‘안중근’이라고 하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공유하는 인물을 매개로 하는 학술 교류가 2022년부터 2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간 소규모의 공동연구회뿐 아니라, 본격적인 공동학술대회도 개최되어 적지 않은 학문적 성과가 축적되었다. 류코쿠대학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는 그 이름에 이미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이념을 반영하고, 그것의 역사적 내용과 현대적 의미를 고찰해 이를 사회적으로 발신하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한다. 이것을 위해 이 연구센터는 연구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대학이 소장한 안중근의 유묵(遺墨)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의 미래: 류코쿠대학에서의 동아시아의 미래를 구상한다’라는 교과목을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안중근의 생애와 평화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안중근, 안중근학, 안중근을 중심한 평화학
한ㆍ일 양국의 학자들이 안중근을 공통분모로 하여 당대의 동아시아 정세는 물론이고 한ㆍ중ㆍ일 삼국의 정치, 경제적 변화까지도 염두에 두면서 그 속에서 동양평화론을 중심으로 한 안중근의 평화사상의 의의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가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스라엘의 다면적인 침공,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전 세계 동서 진영의 대립과 갈등의 고양 등으로 말미암아 최고조에 이른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 속에서 세계 평화의 미래를 전망하고 모색하며 기원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안중근은 ‘탈역사화’하여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공존의 미래를 전망하는 보편적인 기호로서 자리매김하였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 평화학, 혹은 안중근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1부에서 “안중근의 평화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과, 2부에서 구체적으로 문학을 통해 드러난 안중근의 모습에 대한 연구들을 모았다. 이를 통해 안중근의 평화사상은 근대 역사의 특수한 시기에 동아시아를 진동시킨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평화가 절실한 세계에 사상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포함한 평화론으로서, 문명사적인 의의를 띤다는 점이 드러난다. 또한 일본 내에서 안중근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평가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그의 의로운 행위에 공감하거나 또는 그의 평화사상 혹은 의연한 최후에 대한 동경 등을 계기로 한 우호적인 태도, 영웅시하는 태도가 존재하는 현상의 의미를 살핌으로써, 안중근이 이론적, 사상적으로서만이 아니라 상호 공유되는 역사로서 동아시아 평화의 상징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류코쿠대학이 소장한 안중근의 유묵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사례가 소개된다.
안중근 평화론의 현재와 미래
또 미완이지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경제협력 구상’과 ‘한ㆍ중ㆍ일 청년에 대한 공동교육을 중심으로 한 공동의 미래 구상’ 등 구체적인 제언을 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현재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을 살펴본다.
그 밖에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각각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문학에 반영된 안중근의 모습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을 다룬 여러 논문들이 소개된다. 안중근을 노래한 한시(漢詩),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대한 당대 일본 지식인들의 소회와 문학적 반영 양상, 한국과 중국에서 안중근의 사건이 소설화되는 방식과 인식 태도의 차이, 그리고 안중근의 평화사상이 오늘의 우리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소개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 유학하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비롯한 한국을 분석한 여러 권의 저서를 발간한 바 있는 교토대학대학원의 오구라 기조 교수는 에필로그 격의 맺음글에서 “안중근은 한국인이었나?”. “안중근은 영웅이었나?”. “도덕적인 인간이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만큼 안중근이 오늘의 우리(한, 중, 일)에게 던지는 생각거리가 많다는 것이며, 하나하나가 의미 깊다는 것이다.
역사 문제를 두고 여전히 갈등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공생과 상생의 관계를 회복하여 동아시아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의 진원지가 되는 하나의 중요한 길이 이렇게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