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일용할 양식인 ‘빵’이 있어야 산다. 하지만 ‘장미’도 있어야 한다. 장미는 인간의 품위, 즉 공동체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노인 다수는 장미는 물론이고 빵도 얻기 힘든 상황 속에 ‘No人’, 즉 사람도 아닌 짐스러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노인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노인 상대 빈곤율은 40.4%(2020년 기준)에 달하고, 늙어서도 일해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노인 고용률은 36.2%(2022년 기준)에 이른다. 모두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런 현실 속 노인 자살률은 10년 이상 부동의 1위이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한국사회가 받아든 암울하기만 한 노인 관련 최신 지표들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의 오늘이자 머지않은 나의 미래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이런 현실을 ‘개인 탓’으로 돌리며 노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노인은 잉여인간이나 젊은이들의 세금을 탕진하는 존재, 꼰대, 꽉 막힌 사람이라 여겨지며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기본적인 빵조차 얻기 힘든, 암울하기만 한 현실을 개선할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늙음을 외면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사회적인 역할이 있고 품위를 갖춘 인간으로 당당하게 늙어갈 수는 없는 것일까?
새로운 노인상을 찾아서
『선배시민: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는 노인을 시민권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책이다. 이 책은 한국 노인이 처한 현실을 타개할 실마리를 ‘노인도 시민’이라는, 당연하지만 간과되어온 명제에서 찾는다. 노인을 대하는 기존의 태도와 관점을 ‘No人’, ‘어르신’, ‘액티브 시니어’라는 담론으로 정리하고, 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노인상으로 ‘선배시민’을 제시한다. 더불어 관련 철학과 실천을 체계화한 ‘선배시민론’을 통해 노후에도 보통 사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선배시민은 시민이자 선배인 존재, 즉 ‘시민권이 당연한 권리임을 자각하고, 이를 누리며, 공동체에 참여하여 자신은 물론 후배시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노인’이다.
선배시민의 철학부터 실천까지
『선배시민』에는 십여 년에 걸쳐 노인교육을 하며 선배시민을 노인상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노인들과 선배시민론을 함께 공부하며 현장에서 실천해온 전문가들의 간절한 외침을 담았다. 또한 저자들과 함께 선배시민론을 공부한 선배시민들이 시민임을 자각하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후배들의 안녕까지 책임지는 선배로 거듭난 이야기를 다양한 사례와 인터뷰 글을 통해 진솔하게 들려준다.
1장(No人인가 Know人인가)에서는 노인에 대한 세 가지 담론(No人, 어르신, 액티브 시니어)을 살펴본다. 2장(새로운 노인상을 찾아서)에서는 세 노인상에 대한 대안으로 선배시민을 제안하고 선배시민론을 전개한다. 3장(시민이라면 아파도 실패해도 괜찮아)에서는 개인으로서 가족의 집이 아닌, 시민으로서 아파도 실패해도 괜찮은 시민의 집을 살펴본다. 4장(‘나 때는’보다 ‘너 때는’에 귀 기울이는 선배)에서는 ‘나 때는’이 아니라 ‘너 때는’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선배의 태도를 살펴본다. 5장(노년에 부르는 인간의 노래)에서는 노인을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6장(내 공간에서 나답게)에서는 선배시민의 실제 실천 사례를 세 가지 범주(소크라테스 유형, 헬렌 켈러 유형, 은발의 표범 유형)에서 살펴본다. 선배시민론을 포괄하는 「선배시민 선언문」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부록(선배시민론을 공부하며 만난 질문들)에서는 노인교육 현장에서 선배시민론을 공부하며 받았던 질문들에 답하며, 본문의 내용을 한 번 더 정리했다.
누구나 나이 든 보통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하여
한국사회의 노인은 가난, 지병, 불통 등의 특성을 지닌, 돌봄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이 책은 국내외 수많은 선배시민의 사례를 들어 한국사회의 노인이 모두 돌봄의 대상은 아니며, 선배시민으로서 존재하는 노인들은 선배시민론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돌보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노인이 스스로의 존재와 역할을 재정립함에 있어서는 물론, 언젠가 노인이 될 시민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선배시민을 노인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저자들이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함께 만든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위한 마중물’을 중심으로 선배시민 교육을 전개해왔고, 선배시민학회, 선배시민협회 등 선배시민 운동의 구심점을 이루는 조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