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대함과 정확함으로부터
근대건축의 현실을 발견하다
1부 〈분위기〉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중세 기술 혁신의 영향을 받은 7세기 유럽 건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도시들은 가능한 한 대성당을 높게, 이례적인 최고치로 지었다. 조화 면에서는 불균형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낙관적인 행동, 용기의 몸짓, 자부심의 표시, 숙달의 증거였다.”
20세기는 또 한 번의 대대적인 기술 혁신이 일어난 시기로, 건축계도 그 결실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 건축계를 주도하던 아카데미 인사들이 그러한 움직임을 어떻게 차단했는지를 그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고발한다. 미국으로부터 초청을 받기 전, 그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2부 〈미국〉에서부터 마천루의 도시 뉴욕을 중심으로 그의 본격적인 미국 여행기가 펼쳐진다.
“56층에 있는 깨끗한 사무실 아래로 뉴욕의 거대한 야행성 축제가 펼쳐진다. 그것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 (...) 그 자체로 우주 돌연변이처럼 강하고 폭력적인 이 사건의 실체로 보인다. 맨해튼 위에 우뚝 선 뉴욕은 짙은 청색 하늘 속에 있는 장밋빛 바위 같고, 밤의 뉴욕은 한없이 많은 보석 무리 같다.”(P.84)
그는 이러한 뉴욕의 마천루 안에서, 자국에서 그토록 구현하고자 했던 ‘정확한 공기’의 순환을 목격한다. 또한 화재 방지를 위한 온도 감응 장치를, 록펠러 센터 꼭대기까지 45초 만에 올라가는, 프랑스와 달리 잦은 고장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한다.
그는 또한 사람들을 마천루가 있는 곳까지 이끄는, 허드슨강을 가로지르는 조지 워싱턴 다리의 순수하고, 확고하고, 규칙적인 구조에 감탄한다. 지하철, 자동차, 보행자 등을 위해 6개 차선으로 나뉘어진, 검투사처럼 튼튼한 브루클린 다리에 반한다. 그것들이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보자르’식이 아니라 미국식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거대한 것으로 돌아와서 야만인처럼 그것을 즐긴다. 더 좋게 표현하자면 건설적인 정신에 의해 활력을 얻었다. 파리의 비겁함과 퇴위의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짓눌리고, 종종 불명예스럽게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고, 그리스의 초하루에 위탁된 몽상가로 여겨졌던 나는, 여기 미국에서 현실을 발견한다. ”(P. 137~138)
“뉴욕은 재앙이라고 백 번 생각했고,
아름다운 재앙이라고 오십 번 생각했다”
도시 지역 확산에서 발견된 미국식 거대한 낭비
그러나 20세기 기술 혁신의 성과를 흡수한 뉴욕의 도시계획은 한편으로 ‘거대한 낭비’를 초래했다. 도시를 거대한 건물들에게 내어준 대가로 (센트럴 파크를 제외하고) 자연을 상실한 거주민들은 ‘정원 도시’에 대한 환상을 품고 교외로 이주한다. 그로 인해 집에서 일터까지 하루에 3시간을 기차와 버스, 자동차에서 소비해야 하는 그들에게 정작 자연을 누릴 여분의 시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는 교통수단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새 노예제도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미국의 낭비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도시 지역 확장은 수도·가스·전기·전화 설비의 확장을 의미하는데, 그에 따르는 비용도 거주민들의 몫이다. 따라서 그들의 노동 시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러한 현상을 ‘거대한 낭비’라고 표현하며, 이것이 가족의 해체로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낭비에 전념하는 미국의 경제는 엄청난 달러를 쏟아내지만, 그중에 당신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은 얼마 안 된다. 하루 중 일곱 시간은 유용한 목적이 없다. 네 시간은 무익한 비즈니스 활동에, 세 시간은 교통수단에 쓰인다. 나는 이렇게 사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선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 가족이 둘로 갈라진 것은, 도시들이 엉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낭비’는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대가를 치른다.”(P.271)
“미국은 대담하고, 미국인들은 소심하다”
이 시대에는 더 커다란 마천루가 필요하다!
그는 이러한 엄청난 낭비가 오히려 마천루들이 너무 작게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놀라운 말을 한다. 뉴욕 마천루들의 평균 높이가 4층 반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한정된 공간에 훨씬 더 높은 마천루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공간은 녹지로 남겨둬야 거주민들이 교외로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말과 마차의 시대에 디자인된 뉴욕의 구획들이 자동차 시대에 맞게 수정되어 자동차와 보행자의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러한 뉴욕 도시계획의 한계가 미국인의 소심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한다. 현대적인 규모로 건설된 최초의 도시인 뉴욕을 가진 미국인들은 분명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갑자기 세상의 정상에 오른 것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두가 운동선수”인 미국의 대학생들을 강연을 통해 만나면서, 또한 유럽에서는 저평가되는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제대로 영광의 자리에 올려놓은 미국 주류 미술계의 흐름을 읽으면서, 구대륙과 구별되는 생동하는 미국의 정신을 느낀다. 그의 혼을 흔들어 깨운, 루이 암스트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재즈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이 책은 이러한 미국의 정신과 건축을 소개하면서, 1930년대 당시 아직도 기존의 전통과 아카데미니즘에 머무르고 있는 구대륙 사람들에게 진정한 건축의 생동감을 일깨우고자 하는 르코르뷔지에의 염원이 담겨 있다. 또한 미국을 횡단하고 곳곳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르코르뷔지에 특유의 신랄하고 현학적인 문체는 읽는 이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건축 거장의 시선을 따라가며, 격동의 시기였던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예술 및 문화를 엿보는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