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찾아 50여 년,
지구 82바퀴를 누비다
전 세계 커피 수출국에서 일본으로 부임하는 외교관들이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찾는 인물은 총리나 외무대신이 아니다.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이 가장 먼저 만남을 청하는 인물은 바로 호세Jséo 가와시마 요시아키 씨. 커피 연구가이자 농부, 사회운동가이며 커피인들 사이에서 ‘커피헌터’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지난 50년간 전 세계 산지를 누비며 산지별 품종 선택 및 지속 가능한 농법을 계몽해 온 그의 지원 여부에 따라 자국 산업의 명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마다가스카르 밀림에 묻혀있던 고유종 마스카로코페아를 재발견해 보전하고, 르완다에서 ‘부르봉 미비리지’ 클론을 배양해 경제 자립을 이끌고,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던 ‘부르봉 포완투’를 찾아내 명맥이 끊겼던 레위니옹섬의 커피 산업을 부활시킨 일은 전 세계 커피인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그의 업적이다.
《커피헌터와 함께하는 세계 커피산지 여행》 바로 그 사람 JOSÉ 가와시마 씨가 지난 50여 년간 방문해 온 세계 커피산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와 태평양 건너 북미, 중남미와 카리브해 국가들까지…. 책 속에는 저자가 몇 년씩 정주하면서 손수 커피 산업을 일구어낸 나라부터 수십 차례 드나들며 품종 및 재배법을 지도해온 곳, 현실적 여건상 스치듯 들른 생산지까지 36개 커피 국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산자들의 일상이 수백 컷의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5년 1월, 열아홉 살 청년 가와시마 요시아키가 당시 커피 선진국이던 엘살바도르로 유학을 떠난 건 시즈오카에서 커피 로스팅 하우스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가업을 잇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라틴의 물이 잘 맞았던지 부모님 몰래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엘살바도르 국립커피연구소에 들어가 커피 품종과 재배법을 연구하는 일에 푹 빠져버렸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부모님에게는 의절 당했지만 그렇게 해서 가와시마 씨의 커피 인생에는 화려한 날개가 펼쳐졌다.
천성이 바지런하고 호기심 넘치던 그는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부터 시간 날 때마다 인접한 중남미 국가들로 커피 여행을 떠났다. 과테말라와 니카라과, 멕시코를 드나들던 그는 조금씩 활동반경을 넓혀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산지로 날아가 현지 농부들과 함께 먹고 자며 커피 품종 선택 및 재배, 정제에 관한 지식을 전수했다. 탄자니아에 가서는 킬리만자로 산악을 뒤져 ‘진짜 킬리만자로 커피’의 마더트리를 찾아내고, 하와이와 자메이카에 머물며 코나커피와 블루마운틴의 부흥을 이끌었다. 또 태국 왕실이 주도하는 도이퉁개발프로젝트에 참여해 과거 아편 재배지로 악명 높던 북부지역을 커피산지로 탈바꿈시켰다. 칠순을 목전에 둔 지금도 그는 가난한 커피 재배국 르완다와 말라위, 동티모르 등을 수시로 방문해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커피인들 사이에서는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셀럽이지만, 스스로 농부이자 ‘지속 가능한 커피’를 위해 두 팔 걷어붙인 사회운동가임을 자처하는 가와시마 씨. 이 책 《커피헌터와 함께하는 세계 커피산지 여행》에는 그가 만나온 전 세계 커피 생산국의 이모저모뿐 아니라 각국 각지의 특이한 커피 추출법과 커피 제품, 커피의 미래를 위해 생산자들이 펼치고 있는 친환경 재배법, 소비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커피 지식 등 재미있고 유용한 이야기들이 숨은그림처럼 촘촘하게 박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