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가장 귀한 보장은
‘임마누엘’ 하나님이다
영원히 노예로 살 줄 알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억압과 치욕의 땅에서 나오게 되었다. 자유인이 된 것이다. 애굽을 떠나는 순간은 드라마틱했다. 놀라운 기적도 보았겠다, 애굽의 은금까지 가지고 나왔겠다, 찬란한 미래를 확신했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들 앞에 펼쳐진 건 끝없는 광야였다. 그들의 찬양이 불평과 원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출애굽의 길을 여실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열광했었다. 그러나 광야를 걷다 보니 자꾸 헷갈렸다. 물도 양식도 걱정거리가 되면서, 지금 광야 위에 있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의심마저 들었다. 이스라엘에게는 여전히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 믿고 따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p.89).”
물이 부족할 때마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실패했다.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도,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 기둥과 불 기둥도 하찮게 여겨졌다. 그저 당장의 불편과 불안이 해소되기를 바랐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이유나 광야 길의 목표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 비전을 이루는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라고 다를까.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먹고 마시는 문제에 매달리느라 하나님의 목소리를 자주 놓친다. 풀어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 학력, 집, 직업, 재산, 관계, 사회적 위치 등 나를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들을 챙기며 인생을 보낸다. 그러다 거기에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이 아닌 ‘건방지고 우울한 신념’(p.79)에 지배당한다. 이 괴로움이 언제 끝나는지 따져 물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성급하게 새드 엔딩을 선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도 계획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광야’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은 출애굽 여정, 곧 광야 길이 하나님의 계획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또한 광야 길의 목표는 벗어나는 것이 아닌 임마누엘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임을 가르친다. 따라서 광야에서 할 일이란,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알고 변함없이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문제는 그 안에서 다 해결될 일이다.
물론 광야가 놀이동산 같을 수는 없다. 결핍과 상실, 실패 앞에서 어떻게 즐겁게 노래할 기분이 나겠는가. 춤추며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못할지라도 불평과 원망은 그만두자는 게 저자의 요청이다. 그 대신 모세가 그랬듯 내 아픔과 고통, 불안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자는 것이다. 광야를 잘 건너는 방법은 ‘하나님과 함께’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은 이미 임마누엘을 약속으로 주셨으니 그것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지금 광야를 걷고 있는가. 하루빨리 광야에서 벗어나고 싶겠지만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빠른 길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과 내가 어디에 있든지 임마누엘의 약속이 우리의 소망이자 안심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가장 귀한 보장은 임마누엘 하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