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전향
1946년 이태준의 첫 소련 여행까지 다룬 전작이 끝난 시점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이태준의 이념적ㆍ정서적 동반자들이 소련에 열광하던 해방 무렵이다.
그중 저자가 가장 먼저 소환한 이는 월북 시인 오장환. 도쿄에서 절망에 젖어 지내던 시절, 술에 취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혁명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을 울며 애송했더라는 위인이다. 그러나 시인이 정작 예세닌을 번역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그 시절을 훌쩍 넘겨 자신과 조국의 향방을 결단해야 했던 해방 공간의 혼돈 속에서였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20세기 전반부에 나온 번역시 중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손꼽히는 『예세닌시집』을 촘촘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해방이라는 역사적 상황과 정치적 이념, 시민으로서 시인의 임무에 대한 자각 속에서 그의 예세닌 독법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음을 포착해낸다.
그가 번역한 예세닌은 예의 혁명의 기운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파멸한 비극적 서정 시인이 아니라, 과거를 뉘우치며 자신을 채찍질해 나아가던 ‘새로운 고향’의 시인이었다. 그러니까 번역을 통해 재구축한 예세닌의 초상은 곧 오장환 그 자신의 자화상이었다. 『예세닌시집』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의미를 경계 짓는, 한 시인의 선언적 기록이자 전향의 증거물인 셈이다. 당대 지식인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던 러시아문학의 영향을 상기시키는 한 장면이다.
조소친선의 그림자
이렇게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해방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국의 지식인 독자층을 지배한 것은 정치적 경향성이 농후한 혁명문학과 소비에트문학이었다. 남과 북의 전쟁은 실질적 발발 이전부터 이미 러시아문학의 수용을 통해 예행되었으며, 또한 한반도의 분단은 러시아문학 수용의 분단을 의미했다.
북한에선 소련파 숙청과 주체사상 확립 이후 소비에트문학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전체주의적 문화 기획의 틀은 건재했으며, 따라서 소련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북한 문화를 이해하는 직접적이고도 유용한 열쇠가 된다. 저자는 두 개의 장을 할애해 해방 직후 북한에서 전개된 ‘조소친선의 서사’와 스탈린에게 그랬듯 김일성에게서도 똑같이 반복된 ‘태양의 수사’을 분석하면서 한반도 북쪽에서 어른거렸던 소비에트의 그림자를 이해해본다.
요컨대 조선친선의 수사는 표면적으로는 평등 원칙에 입각한 국제주의 이념의 원리였지만, 실은 타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의 수사였을 뿐이다. 소련이 구사한 ‘영향력의 기술’과 북조선이 확산시킨 ‘수사의 기술’을 통해 이념과 제도는 문화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조선의 정치 담론에서 태양 수사의 원조는 스탈린이었으며, 김일성을 또 하나의 태양으로 호명하는 수사법은 당연히 조소친선 이념에 속한 자동 어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태양 수사의 계승은 전제 권력의 계승일 뿐이었다.
강철과 고리키와 어머니
반면 반공 이데올로기가 통치 원칙이던 남한에서는 혁명 러시아의 예술 문화가 금지되고 대신 반체제 망명 러시아문학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학으로 부상했다. 혁명과 공산주의의 폭력 속에 희생당한 러시아 지식인의 운명은 해방과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국 지식인의 운명으로 겹쳐 읽혀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분단 이후 1970년대까지 한반도에서 러시아문학은 체제라는 축에 얽힌 ‘한손잡이 문학’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저자는 이 와중에 1980년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한국(남한) 사회가 읽은 소비에트문학이 하나의 문화정치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었음에 주목한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정국에서 좌익 지식인들이 주도했던 소비에트문학 열풍의 리바이벌 현상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전범으로 손꼽히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각각 1985년과 1986년 청년 운동가들에 의해 번역 출간되면서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고리키와 오스트롭스키 모두 시대가 읽은 문학이었다. 물론 1980년대와 일제 강점기의 독법 사이에는 유사성과 함께 차이점도 존재한다. 두 시대는 문학의 이념성을 앞세웠다는 면에서는 공통되지만, 현대가 읽은 고리키와 오스트롭스키는 한결 구체적인 목적성을 띠었다. 당대 문학은 지식인의 독점물이었던 일제 강점기와 달리 훨씬 광범위한 민중적 지지 속에서 집단 기획과 합의에 따라 수용된 것이었다. 요컨대 일제 강점기 『강철』과 『어머니』가 ‘밀실’의 문학이었다면, 1980년대 두 소설은 ‘광장’의 문학이었다.
과연 1980년대 중후반은 소련 문헌의 시대였다. 국내 번역문학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45~1949년의 혼돈기에는 정치성 강한 소비에트문학이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문학 외에도 소비에트혁명 관련 보도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니까 1980년대 중후반 역시 그 혼돈기에 견줄만한 일종의 ‘의사(疑似) 혁명’ 시대였다. 소비에트문학의 영향으로 노동자 문학과 운동권 문학이 발판을 마련했고, 급기야 1988년은 노동문학과 노동해방문학의 시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전태일문학상이 제정되어 제1회 수상작이 나온 것은 이듬해인 1989년이다. 저자는 이 현상을 『강철』와 『어머니』를 전범으로 활용한 결과였다고 본다.
페레스트로이카와 후일담
소련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한 시점에 한국 독자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서적에 몰입했다는 사실은 분명 역사적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한국 문학의 반응은 이중으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소련의 실패는 국내 운동권 후일담 문학에 그늘을 드리우는 한편, 양국 간 문화개방의 결과로 소련과 고려인을 주제 삼은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켰다. 북한 문학과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관심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에 들어와서다.
저자는 대표적인 후일담 소설 몇 편과 문인들의 러시아 여행기를 되짚으면서 아득한 추억처럼 희미해진 페레스트로이카의 잔영을 재해독한다. 소련이 무너지자 좌표도 사라졌고, 이데올로기의 전령을 자처해온 문학은 이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후일담 문학과 여행 문학은 이 물음과 함께 출현한 시대적 징후였다. 자포자기적 패배주의, 혼돈의 자아 정체성, 새로운 목표 탐색이 혼재된 복잡한 심상의 서사가 펼쳐졌다. 그러나 단절의 시기, 혹은 어둠과 절망의 시기, 혹은 내면성의 시기로 지칭되는 1990년대 문학에서도 러시아와 소련의 자리는 의미심장했다. 소련의 붕괴가 가져다준 충격은 물론 컸지만, 페레스트로이카는 러시아와의 재회를 가능케 해주었으며, 새로운 생명력과 우정과 화합의 길을 열어주었다.
디아스포라 경계인의 문학
근현대 한국 문학사 기술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두 과제가 있다. 분단 이후의 남북 문학을 어떻게 포괄할 것인가,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이후 국외로 퍼져나간 디아스포라 한민족의 글쓰기 역사를 어떻게 분류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러한 차원에서 저자는 한국문학과 러시아문학은 유사한 운명을 갖는다고 말한다. 러시아문학 역시 혁명 후 국외에서 전개된 망명문학과 소비에트 체제에서 비공식적 방법으로 출간되거나(타미즈다트(тамиздат), 사미즈다트(самиздат)) 아예 발표되지 못한 채 ‘지하’에(즉, 서랍 안이나 기억 속에) 묵혀두었던 언더그라운드 문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숙제로 남아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도형에 따라 무한 복제되던 일부 소비에트문학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다.
저자는 ‘길 위의 민족,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장을 통해 드넓은 동토에 흩뿌려진 존재들의 역사를 재환기한다. 결론은 진정한 디아스포라 논의의 관심은 혈통상의 뿌리를 찾는다거나 민족과 민족 또는 영토와 영토 사이의 경계를 밝히는 문제에 있지 않는다는 것. 예컨대 대표적인 고려인 3세 작가 아나톨리 김은 21세기 디아스포라 이론이 깨우쳐 주장해온 ‘경계 허물기’의 과제를 일찍이 실존적으로 터득해 각 개인이 곧 인류 전체라는 우주적 원리로써 대답했다. 즉, 경계인의 문학은 민족 정체성 문제 너머 이미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에 도달해 있다.
광장과 밀실 그리고 이념의 토포그라피
그리고 20세기 전반기 지나 후반기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체호프와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의 유명세에 대한 분석이 이어지고, 책은 자신의 명명을 스스로 설명하는 마지막 장에 이른다.
대략적으로 한국에서는 약 50년을 주기로 러시아를 향한 관심의 고조가 되풀이되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개화, 해방, 민주화처럼 국가적 정체성이나 자의식의 큰 변화를 겪는 시점마다 러시아는 강력한 우방, 혹은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전범, 혹은 사회주의 신념의 배반자인 동시에 반면교사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동양(중국)에 반하는 서양으로 인식되거나, 제국주의(일본)에 반하는 반제국주의로 추종되거나, 반자본주의 운동에 역하는 자본주의 물결의 예증인 양 해석되면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시각과 이데올로기에 상대주의적 관점을 제공해주었다. 이렇게 러시아를 향한 관심의 고조는 한국이 겪어온 정체성의 변신과 관련된 징후들이었다. 즉, 한국에서 러시아문학은 바로 그 변신의 징후를 뒷받침하고 반영하는 기록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최인훈 『광장』의 어법을 빌려, ‘밀실’의 텍스트 너머 ‘광장’의 텍스트로 기능해온 것이다.
따라서 해방 이후 반세기 한국 사회를 관통했던 러시아문학의 궤적을 되짚을 때, ‘광장과 밀실’의 이분법은 결코 생경한 구도가 아니다. 사회주의냐 민족주의냐, 소련이냐 미국이냐, 북조선이냐 남조선이냐로 갈려버린 분단 현실은 러시아문학 독법에 양분화를 가져왔고, 자연스럽게 개인의 내면에도 분단의 갈등을 불러왔다.
저자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소련 해체 이후 쓰인 최인훈의 『화두』를 바로 이 지점에다 소환한다. 그에 따르면 『화두』는 여러 겹 ‘길 떠남’의 이야기다. 회령 출신인 작가(최인훈)는 원산에서 소련 체제를 경험하고, 1950년에 월남했다. 북조선에서 학급 소년단원에게 추궁당한 자아비판회 사건과 「낙동강」 감상문을 써 학급 전체 앞에서 칭찬받은 사건은 광장과 밀실에 대한 작가 평생의 화두로 남아 있었고, 어언 세기말 소련이라는 장벽의 붕괴는 그 화두에 대한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니까 『화두』는 해방에서 개방으로 이어진 “기억의 밀림” 속에서 스스로 맥락을 찾아가는 대장정의 기록이었다. 저자는 작가의 이 화두가 분단 현실을 겪어온 한민족 전체의 화두에 해당하며, 따라서 이 소설은 집단 역사 서술을 대신한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진술을 이렇게 마친다. “최인훈은 『광장』이 ‘1945년에서 1950년까지 북한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소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화두』는 최인훈이 1950년 이후 남한에서 생활했기에 쓸 수 있었던 소설이다. 소련 붕괴와 개방이라는 역사적 전환을 목격했기에 비로소 쓸 수 있었던 소설이다. 분단 민족의 정체성과 기억과 이념의 뒤엉킴을 추적한 그 혼신의 궤적 위에서 러시아와 러시아문학의 자취는 한 번도 사라졌던 적이 없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러시아와 러시아문학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