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7차원 우주의 오링 문명에서
인류를 단 3일 만에 득도시키는 미지의 문서를 전달했다!
이 책의 1부 〈마지막 변수〉는 분명 소설로 시작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한, 블랙코미디가 남발하는 SF소설 정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간 소설 파트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 먼 7차원 우주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오링 문명이 있다. 모종의 이유로 자원이 고갈된 오링인들은 정보 에너지를 수확하기 위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뮬레이션 지구 E-3000을 만든다. 그러나 정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인간 변수들이 생각하는 것을 멈춰버리자 오링 문명은 물론 지구의 모든 인간 변수들까지 멸종할 위기에 처하는데…. 이에 오링인들은 지구의 인간 변수들과 오링 문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변수의 용량을 확장하는 마지막 변수 프로토콜을 발생시키고 지구 E-3000에는 단 3일 안에 득도할 수 있는 방법이 담긴 〈열반 3000〉을 전달한다.
과연 이 미지의 문서는 우리를 득도시키고 마지막 변수를 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알고 보니 시뮬레이션이라고? 이 지구를 만든 7차원의 우주 문명이 지구에 전달한 문서가 있다고? 흥미로운 떡밥들을 던져주며 시작되는 이 소설은 다음 이야기로의 진행을 궁금케 한다. 그 문서의 내용은 뭘까? 과연 그 문서를 전달받은 시뮬레이션 지구 E-3000의 인간 변수들은 마지막 변수를 찾아냈을까? 과연 지구와 오링 문명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존속? 혹은 멸망?
그러나 저자는 그 답을 직접 내놓지는 않는다. 그 대신 대뜸 〈열반 3000〉이라는 제목의, 책 속의 책을 독자 앞에 던져놓는다. 그렇다. 이 〈열반 3000〉은 앞서 소설 파트에서 소개된, 지구 E-3000의 인간 변수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그 문서 자체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더 이상 독자가 아니다. 소설 속에 투입되어 다음 장을 직접 써 내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어찌 보면 철학서이고 어찌 보면 자기 계발의 성격을 띠고 있는 "득도", 즉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고리타분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SF소설이라는 외피를 가져왔다. 흥미롭고 그럴듯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결국 이 책의 구성 또한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2부 〈열반 3000〉에서도 숨 쉬듯이 농담을 던진다. 농담인지 모르겠다고? 어디가 웃기는 거냐고? 독자 여러분이 눈치채지 못한 것까지 블랙코미디라고 치자.
SF소설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갑자기 "모델"이니 "격"이니 하는 생뚱맞은 전개에 독자 여러분은 지레 겁먹거나 당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에 당장 책을 덮어버리기엔 오기가 생긴다. 〈열반 3000〉의 서문에서 저자는 아주 자신 있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전부 읽는다면 분명 득도할 수 있다고! "내가 득도를? 정말?"
이 장치가 끝까지 읽게 하기 위한 "페이크"인지, 아니면 "진실"인지는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다. 사실 오링 문명이나 지구 E-3000의 존속이야 사실 알 바 아닐지 모른다. 다만 나의 득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독자 여러분은 끈기 있게 다음 장을 넘기고야 말 것이다. 책이 어딘가 외계어처럼 어렵다 느껴진다면, 그게 맞다. 이 문서는 애초에 외계인(오링 문명의 수수케이키 박사)에 의해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외려 외계어를 이렇게까지 잘 이해하며 읽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열반 3000〉은 3일만에 득도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만큼, 시간대별로 인간변수들이 이해하고 갖춰야 할 것들을 제시한다. 1일 차는 득도에 필요한 재료들을 정의한 파트인데, 모델과 격, 이성, 안목과 공감 등 다소 지루하고 까다로운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탁월한 예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다.
재료 습득이 얼추 끝나면 2일 차로 넘어오는데, 어느덧 이 외계 문서의 해독법에 적응이 된 것인지 더 쉽게 이해가 된다. 2일 차는 이 재료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 설명한 파트다. 에센스, 김득도, 스타일 그리고 실현 한계를 상상하는 법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2일 차를 지나면서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렇게 득도를 직구로 표현한 책은 처음이다"라고.
3일 차는 앞서 준비한 재료들로 요리한, 득도한 상태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파트에 대해서는 책의 문장을 빌려와 설명하기로 하자.
득도 여부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본인이 판단하는 것인가 타인이 판단하는 것인가? (중략) 놀랍게도 "이제부터 내가 득도의 길을 걸을지 말지"가 아니라 "내가 이미 득도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중략) “나는 득도했어!”라고 말하면 끝이다. 그리고 자신이 득도하기로 하면 빠르게 실제로 득도하게 된다.(본문 151 페이지)
많은 경전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들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도 하고, 쉽고 빤한 얘기라고 여길 수도 있다. "말이면 뭘 못해?" 라고.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3일 간의 여정을 부디 함께해보시길 자신 있게 추천한다.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독창적으로 득도에 대해 묘사한 책을 본 적이 있는가?
득도한다는 것은 곧 우주를 내 중심으로 만들어 산다는 것이다. 나만의 소우주를 구축하여 내가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득도는 위대한 성인이 되거나 세상 이치의 깊은 깨달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저마다 다르게 처한 상황과 한계 속에서, 내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김득도"한 상태라고 표현한다. 김득도한 상태는 독자 여러분이 제 삶을 주체적으로 리드하도록 만들 것이고, 내면의 평안을 찾게 할 것이다. 부디 이 3일 간의 여정을 함께 마무리하여, "블랙 코미디"로 시작한 여정이 "이너피스"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사항. 유의하시라. 독자 여러분이 오늘 스친 누군가는 사실 지구 E-3000을 감독하기 위해 방문한 오링 문명의 외계인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