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기고 싶은 내면의 은밀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놀라운 이야기
“모든 초상화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망, 슬픔, 경탄, 공포, 절망 그리고 꿈까지. 이 초상화들에도 활짝 웃는 모습은 없다. 눈처럼 하얀 치아 그리고 생기도 찾을 수 없다. 밝은 빛깔의 머리카락 아래, 화가 난 눈초리를 한 얼굴만 있을 뿐이다. 얼굴을 확대해 그린 초상화 속 소년은 회의적인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볼이 통통한 소녀의 얼굴은 마치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고 싶어 하는 얼굴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초리의 분홍빛 모자를 쓴 아이는 의심스럽다 못해 경멸까지 담은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미지들이다.”
-아네미 레이센
짧지만 철학적 메시지로 가득한 글은 바람(소망)을 다루고 있지만, 이면에 자리한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결핍을 드러낸다. 한계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 본성의 허무주의가 여실히 그려졌다.
“무모하지 않은 아주 흔한 용기”를 갈망하는 작은 바람부터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바람까지 짧은 글들은 삶에 관한 형이상학적 물음으로 가득하다.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에서 맞닥트린 절망을 끊임없이 성찰하도록 한다.
‘바람’이 슬픈 까닭은 ‘결핍’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모두 절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바람은 절망의 끝에서 발견하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꼭꼭 숨겨 둔” 하나의 “행복”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유일한 “무엇”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온종일 흥얼거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음악이면 좋겠어요. 모두가 노래하고
휘파람으로 불고 흥얼거리기도 하는 노래면 좋겠어요.
사랑에 빠졌을 때 생각나는 그런 노래.
사람들이 어쩌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나를 들었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두 눈을 감고
가만히 듣다가 내가 끝나면
깊은 한숨을 쉬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그래도 내가 완전히 끝난 것은 절대 아니에요.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아요.
낯설고 아름다운 서른세 개의 얼굴, 불안하고 매력적인 글은 불안전한 우리 삶의 많은 공백을 생각으로 채워준다. 불교에서 33은 서른세 명의 관세움 보살로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서른세 명의 얼굴들이 품은 이야기에서 마음속 깊숙이 숨겨둔 당신의 비밀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우울하고 이상하게 희망적이며, 아름다운 책.
■ 잡을 수 없으니 더욱 아름다운 나의 바람
묵자(墨子)는 이익이 없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 당신의 사랑이 행동으로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마음속으로만 품은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의 바람》은 가짜 소망으로 가득하다.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바람은 우리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고는 도도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바람이 남긴 것은 영원한 공허함이 아니다.
나는 삶이 무엇인지 알면 좋겠어요.
…
드넓은 하늘에는 태양이 내리쬐고
구름이 뭉게뭉게 뭉쳤다 다시 흩어지는
광활한 들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러나 인생은 해 질 녘 작은 땅에 홀로 선
어린 짚일 뿐이에요.
나는 그 짚을 꼭 붙잡고
놓지 않을 거예요.
책에 담긴 서른세 개의 초상화는 담담하게 우리 삶이 커다란 결핍으로 만들어진 불완전함이라고 고백한다.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어와 하나 남은 지푸라기를 뽑아버릴 듯 흔들어댄다.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고, 잡았다 싶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바람. 바람이 바람인 까닭은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순간 더는 바람일 수 없다. 모든 바람에 다르듯, 흔들림도 같지 않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우리는 또다시 흔들린다. 그렇게 바람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하루를 선물한다. 삶을 지속하는 이유이며, 그래서 《나의 바람》은 쓸쓸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