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개장합니다!”
어딘가 수상쩍은 찻집이 선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유쾌한 위로
산겐자야의 골목에 위치한 작은 찻집 ‘비긋다’에서는 ‘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라는 아주 특별한 모임이 열린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 자신의 사연과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한 뒤 비긋다를 방문하면 된다. 밝고 당차지만 실연의 아픔을 지닌 회장 모모코와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스님 구로다,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은 외모를 지닌 점장 아마미야가 비긋다의 문을 활짝 열고 상담자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사연을 안고 비긋다를 찾는다. 그 사연은 그들이 마음에 품은 요리처럼 눅진하기도 하고 시큼하기도 하다. 회계 사무소에서 일하는 고지마 나기는 햄버그스테이크를 만들다 말고 충동적으로 비긋다를 찾았다. 그녀에게 무려 삼백만 엔이라는 큰돈을 빌리고도 ‘치즈는 싫어. 깔끔한 맛으로 해.’라며 아무렇지 않게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하는 남자 친구 때문이다. 서점을 운영하는 기무라 씨는 세상을 떠난 아내가 늘 손수 만들어 줬던 우메보시가 먹고 싶지만 도통 어떤 맛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상점가에서 ‘여월’이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마키코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동거인 아키라의 메시지 때문에 가슴이 착잡하다. ‘내 짐 좀 보내 줘. 착불이라도 괜찮으니까.’
상담자가 오면 아마미야가 이야기를 듣고 적절한 공감과 날카로운 조언을 던진다. 모모코는 상담자의 추억의 음식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 상담자는 요리를 맛보고 비로소 묵은 감정을 흘려보낸다. 그러고 나면 구로다가 나서서 과거를 성불시킨다. ‘애통한 일을 겪어 얼마나 상심이 크셨습니까.’ 이로써 매장위원회는 마무리다. 얼핏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진심 어린 위로와 추억의 음식이 담긴 맛있는 요리는 의외로 마주치기 어렵다. 그래서일 거다, 비긋다를 나서는 상담자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운 것은.
“실연의 상처를 잊는 방법은
시간, 공감, 복수뿐!”
한 끼 요리로 완성한 다양한 감정의 맛
애틋한 마음을 묻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다정한 소설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건 상담자들뿐만이 아니다. 매장위원회를 운영하는 삼인방 역시 잊지 못할 요리를 마음에 하나씩 품고 있다. 사 년간 사귄 남자 친구와 하루아침에 헤어진 모모코에게는 자신이 남자 친구에게 해 줬던 버터 치킨 카레가 그렇다. 모모코는 ‘내가 먹어 본 카레 중에 최고로 맛있어!’라는 그의 말이 진심이었는지 궁금하다. 구로다에게는 별 모양 피자가 있다. 축하할 일이 생기면 어머니가 만들어 내왔던 별 모양 피자를 늘 받고 싶었지만, 어쩐지 자신만을 위한 별 모양 피자는 한 번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늘 밝아 보이는 아마미야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늘 만들던 당근케이크에 얽힌 추억 때문에 당근케이크를 먹을 수 없다.
비긋다를 찾는 상담자들이 처음 본 세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세 사람의 마음속에도 소중한 누군가가 있고, 잊고 싶은 과거와 매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사연에 함께 슬퍼하고, 크게 분노하고, 종국에는 함께 울면서 응원하는 세 사람의 존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친구와 같다. 실제로 『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에서 그리는 세 사람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딘가에 찻집 비긋다가 있을 것만 같은 친근감마저 든다.
『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는 마음이 헛헛한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친구가 되어 준다. 세 사람의 죽이 척척 맞는 ‘티키타카’를 보며 정신없이 웃다 보면 훅 치고 들어오는 따뜻함에 눈물이 핑 돌고, 눈물을 닦고 있으면 어느새 어깨를 토닥여 주기도 한다. 그러면 남는 것은 가슴 밑바닥까지 대청소를 끝낸 듯한 시원함이다.
“그렇게까지 볼품없어지는 거야말로
진짜 사랑이잖아요. 누가 뭐라든.”
누군가를 위해 볼품없어지는 마음과
타임캡슐처럼 소중히 묻어두고 싶은 기억들에 관한 이야기
추억은 마치 사진처럼 한 장면으로 기억에 보관되지만, 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건 다양한 감각이다. 즐겨 들었던 노래와 함께 밀려오기도 하고, 함께 먹었던 음식과 먹었던 음식과 함께 떠오르기도 하며, 때로는 그날의 후텁지근한 공기나 옷깃을 파고들던 차가운 바람 같은 것들이 과거를 몰고 오기도 한다. 『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는 그중에서도 음식을 기억의 촉매로 삼는다.
매장위원회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는다. 함께하지 못할 때에는 서로의 식사 여부를 궁금해한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상이다. 요리에는 재료를 사고, 순서대로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 과정이 모두 포함된다.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먹는 시간보다 준비하고 치우는 데 더 오래 걸릴 텐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해 이 지루하고 볼품없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떠나고 식탁의 맞은편이 비었을 때의 텅 빈 그리움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매장위원회의 세 사람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채워 넣으려 하지 않는다. 텅 비었으면 빈 그대로 마치 타임캡슐처럼 조용히 묻어 준다. 그렇게 깊은 곳에 묻힌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 열심히 살다가 가끔 생각나면 그 자리에 돌아와 꺼내 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