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로 들여다보는 ‘인간 톨스토이’의 고통과 절망
19세기 거장의 깨달음에 비추어 인생의 목적을 다시 찾다
우리는 왜 톨스토이를 읽어야 할까? 그 이유를 이 거장의 방대한 신화에만 묻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톨스토이를 통해 지금 시대에도 주효하고 실용적인 뭔가를 얻고 싶어 한다. 이 책의 저자 석영중 교수는 이러한 독자들의 욕구를 가장 정확하게 충족해온 러시아 문학 연구자로, ‘도덕’과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톨스토이의 드넓은 문학 세계, 인생론을 생생히 전달해왔다.
톨스토이는 당대에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했지만, 지금도 그의 문학을 사랑하든 아니든, 그의 도덕론을 긍정하든 아니든 그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세계 최고의 문학작품’ 선정에서 항상 우선적으로 언급되는 그의 이름을 접하다 보면 어떻게든 그를 읽어보긴 해야겠다는 강박마저 갖게 된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작품은 몹시 길고 방대하다. 모두 90권이나 되는 톨스토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저자는 90권을 읽는 대신 소설 한 권으로 톨스토이의 모든 것을 꿰뚫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안나 카레니나』다.
톨스토이는 중년의 위기를 겪은 후 ‘회심’을 계기로 ‘위대한 대문호’에서 ‘세기의 현자’로 거듭나게 되는데, 『안나 카레니나』는 그의 이런 인생 전환기를 예고하는 작품으로서 사랑, 결혼, 종교, 윤리, 예술, 죽음, 인생에 관한 그만의 가치관이 거의 다 녹아 있다. 이 책은 인류 최고의 문학 『안나 카레니나』를 중심으로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문학작품들과 인생 지침서들, 그리고 모순적인 생애를 넘나들면서 ‘톨스토이 인생론’이 탄생한 배경과 더불어 21세기에도 유효한 거장의 충고를 빈틈없이 걸러낸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처절하고 집요한 대답
이 책의 도입부를 여는 흥미로운 물음, ‘톨스토이는 왜 안나 카레니나를 죽였을까’는 그의 문학 세계와 인생론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는 첫 번째 열쇠가 된다. 석영중 교수의 해설을 듣다 보면 우리가 영화와 소설로 친숙하게 접해온 ‘안나 스토리’가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도덕적인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실임을 깨닫게 된다. 톨스토이는 안나의 죽음을 통해 상류층의 모든 것, 그들의 사고방식과 습관과 생활 태도, 사랑과 연애와 결혼, 그리고 심지어 예술관과 음식까지 비판하며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마친 이후 톨스토이는 실제로 그가 소설 속에서 비판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톨스토이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고, 귀족이었지만 귀족을 미워했고, 90권의 책을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고,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제도를 부정했고, 언제나 육체의 욕구에 시달리면서 금욕을 주장했고,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지성을 증오했다. 이 책은 이런 톨스토이의 고통스러운 모순이 남겨준, 시대를 초월하는 근본적인 가치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안내한다.
허무에 맞서 가치 있는 삶을 만든다는 것
톨스토이는 가장 예술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지만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색보다 행동을 중시했다. 그는 햄릿처럼 생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저술은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철학이나 형이상학이나 종교가 아닌 실생활의 영역을 위해,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쓰였다. 즉 그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어떻게 제대로 살 것인가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으로 이루어낸 예술성 높은 소설들을 통해 자신도 실천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실천하도록 설파한 ‘도덕적인 삶’으로 향한다. 그렇게 ‘위대한 대문호’는 ‘세기의 현자’, ‘위대한 교사’로 거듭난다.
석영중 교수는 톨스토이가 위대한 작가에서 세기의 현자로 거듭나게 된 가장 명백하고 강렬한 계기로 ‘죽음’을 꼽는다.
“톨스토이 도덕론은 죽음에서 시작한다. 죽음 앞에서 생은 의미를 잃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우정도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 죽음만이 절대적인 진실이고 나머지는 전부 허위였다. 그는 이 지독한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학습했지만 종교조차도 그에게는 위선처럼 여겨졌다. 방황하던 그는 결국 도덕에서 답을 찾았다. 선한 삶, 정직하고 성실한 삶, 절제하는 삶만이 허무의 늪에 빠진 인간을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 본문 중에서
죽음에 대한 강렬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극심한 허무감은 도덕에 대한 집요한 천착으로 이어진다. 나쁜 사랑과 나쁜 결혼의 묘사에서 시작해 음식, 공간, 예술, 종교 등을 아우르는 그의 인생론은 방향 없는 삶, 무방비한 욕망에 휘둘리는 삶은 결국 허무에 갇힐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암시한다.
이 책에 담긴 톨스토이의 설교에서 핵심적인 부분만 간추리면 결국 ‘절제’와 ‘나눔’과 ‘베풂’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근본적인 가치들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에 그래도 인간이 계속 생존하려면 근본적인 가치들을 붙잡아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너무나 비실용적으로 들리는 톨스토이의 도덕적인 가치들에서 가장 실용적인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