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가치, 안전
화려한 장식을 꽃피운 아르데코Art Deco, 공업느낌의 거친 소재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군더더기가 없는 세련미를 자랑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처럼 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인 스타일은 그 시대의 문화와 산업에 따라 변천해왔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서도 변함없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바로 안전이다. 안전이란 사전적 정의로 어떤 위험이나 사고가 날 요인이 없고 그런 사실이 확인되어 편안한 상태를 일컫는다.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살 소비자는 없고, 안전하지 않은 공간 안에 머물 방문자는 없다. 따라서 안전한 제품을 위해 나라별, 대륙별로 공통된 규격이 존재하며 이를 지키지 않은 제품은 법에 따라 판매할 수 없다.
안전에 관해 통용되는 기준은 늘 존재했지만 이를 체감하는 수준은 상대적일 때가 많다. 어린아이를 위한 안전기준이 어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홍수 피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적인 안전체감과 관련해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장애인, 어르신, 어린이 등 안전취약계층과 관련된 이슈다. 오감 중 어느 한 부분 이상 제약이 있다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하는 데 치명적인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한 고려는 시작 단계부터
제품과 공간을 개발할 때 다양한 사용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970년대 자동차 회사들은 에어백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 모양의 인체모형을 활용해 차량 충돌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문제는 이때 사용한 모형이 평균 성인 남성의 신체 규격에만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제조업체와 디자인팀이 대부분 남성 인력으로 구성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차량 생산 이후 발생한 추돌사고에서 에어백의 압력에 의해 어린이와 여성 운전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사용자에 대한 고려가 미비한 탓이었다. 이후 자동차 업계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볼보Volvo는 1995년부터 여성 인체모형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에 세계 최초 임산부 가상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요 자동차 제조회사들이 여성의 인체 특성을 반영한 모형 대신 사이즈가 작은 남성 인체모형으로 충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미국 버지니아 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전면 충돌 사고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할 확률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73%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 안전부터 재난까지, 안전을 위한 디자인
이번 호에서는 장애인들이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안전사고의 특징을 분석하여 포용적인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겪기 어려운 재난 상황, 범죄, 위생 등 다양한 형태의 안전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크라이나 피난민 대피소를 건축 중인 슬라바 발벡Slava Balbek, 미국 접근성 위원회 위원 카렌 브렛마이어Karen Braitmayer와 로버트 니콜스Robert Nichols, 청각장애인 건축가 리처드 도허티Richard Dougherty, 인도의 시각장애인학교 건축가 아난드 소네차Anand Sonecha 등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해외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이번 주제를 통해 안전에 대한 사고의 확장과 더불어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