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의 노트, 다윈의 진화 기행문,
퀴리의 라듐 일기, 도킨스의 유전자 에세이…
500년 지성사에서 건져 올린 102개의 황금 원전
인간의 신체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내는 다빈치의 노트를 시작으로, 지나친 문명 발달로 인해 인류가 위협받는 현 세태를 개탄하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기고문까지 102개의 원전을 묶은 책이다. 일기와 기행문, 연구 기록, 문헌, 과학적 사료 등을 엮은 이 책을 통해 인류 지성의 발전사를 한 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지식 발견의 주체자들이 직접 쓴 최초의 원전 기록을 그대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다빈치는 생애 약 8천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는 그중 〈부검〉, 〈해저의 흔적〉, 〈새들의 눈〉 등 다섯 편의 단상이 실렸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해부학과 지구과학, 동물학 등 현대에는 하나의 전공이 된 학문 분야를 완전히 자유롭게 오가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탐구하고 사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체 조직의 수축과 이완, 혈액의 이동에 관한 기록,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는 남성의 성기에 관한 기록은 다빈치의 천재성은 물론 관찰력과 유머감각까지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인간과 다른 모든 동물이 신에 의해 창조된 존재가 아닌 뇌가 없고 척추만 있는 연체동물(몰러스크mollusc)로부터 진화했다는 자신의 생각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렇게 꼴사납고, 파괴적이며, 무시무시한 대자연의 추한 모습이라니…… 필시 악마의 사도가 쓴 책일 거야.” 그런 그가 『종의 기원』(1859)을 출간하게 된 것은, 1831년부터 약 5년간 영국 군함을 개조한 비글호를 타고 브라질과 티에라델푸에고섬,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탐험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윈은 이 탐험에서 유목민과 현대인의 차이 혹은 인간과 동물 간의 유사성, 지질학적 차이에 따른 동식물 등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에도 ‘진화 기행문’의 일부가 실렸다. 이 기록들은 후에 ‘진화론’의 필요조건들로 제시된다.
“하루 온종일 끓는 광석을 쇠막대로 저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색의 ‘라듐’을 발견하고는 매우 행복한 상태로 매일매일 실험실에서 보냈다”라고 하는 퀴리 부인의 일기는 후대에 남은 그들에 대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라듐’의 특성에 의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속에서도 오직 연구에만 몰두해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처럼 최초 발견자들의 원 기록은 그 원리를 궁금해하던 애초의 상황부터 중간 과정, 순간순간의 정신적 단상, 그리고 마침내 발견을 이룬 희열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담담히 풀어가는 명석한 이론 설명을 포함해, 독자들에게 최대한의 정확성을 발휘해 지식을 전달한다. 무엇보다 생생한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 역시 그 체험의 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단 한 권으로 읽는 인류 지식의 발전
과학 지식 뛰어넘는 ‘대중교양서 읽기’
태산같이 쌓인 500년 인류지성사의 원전을 발견하고 수집, 편집하여 102개의 꼭지를 엮게 된, 옥스포드대학교 영문학 교수 존 캐리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서 말한다. “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쉽게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기 바란다.” 수없이 쏟아지는 지식교양서들이 모두 이 단순한 목표를 의도로 삼아 책을 내고 있다. 이 책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편저자의 특별한 ‘주의’나 ‘주장’은 배제한 채 지성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최초의 발견 기록들, 그 순수한 최초의 원전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과학 양서들이 이미 넘치도록 출간되고 있지만, 고백하건대 우리는 파편화되거나 결과론적인 지식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광범위한 단어에 의문이 들 것이다. 물론 이 책 속에 실린 각 원전의 기록자, 혹은 각 원전이 담고 있는 내용은 거의 지식 중에서도 ‘과학 지식’이 기본 맥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과학이 어찌 ‘자연과학’이라는 범주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곧 인류 사회와 연계되는 것이며, 그 때문에 이 육중한 책 속에는 과학을 중심으로 삼되, 기술의 발명과 인류 미래 제시, 과학자가 지닌 휴머니즘 세계관, ‘생물’ 범주가 아닌 생명체에 대한 단상에 이르기까지 과학을 뛰어넘는 다양한 각도의 지식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존 캐리는 원전 속에서 기본 원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을 일반 독자들이 직접 체험하기를 바랐다. 이는 마치 강사를 거치지 않고, 최초의 발견자(학자)가 직접 독자와 대면하여 설명해 주는 것과 같다. 편저자가 서문에서 설명하고 있듯, 그는 이 책에서 소개한 원전을 고른 기본 조건으로 ‘흥미롭고 잘 쓰여 있는지’와 더불어 ‘깊이 있는 지적교육을 받지 않은 독자들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기록인지’를 중요시하였다.
이는 지적 수준이 높은 몇몇 소수를 위한 책이 아니라 철저히 대중교양서를 지향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의 향유물이 아닌 수많은 독자가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전 기록에 의한 최초의 발견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과학자, 의사, 수학자, 문학 박사…
7인의 전문가가 완성한 고급 번역본
『지식의 원전』이 대중교양서를 지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과학이론에 대한 지식 없이는 독자에게 온전히 그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방대한 인류지성사를 한 권에 담은 ‘대중교양서’를 내놓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감히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번역의 질 때문이라는 점도 일러두고 싶다. 여기서 번역의 질이란 매끄러운 문장으로 잘 읽히도록 바꾸었다는 포장의 의미가 아니라, 여러 분야로 세분화되는 지식의 각 분야와 이에 따른 전문용어의 나열 속에 국내 독자들에게 최대한으로 정확한 원전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특성을 얼마만큼 만족시켰느냐의 관점이다. 물리, 수리, 생물, 화학, 천문, 의학, 지질학 등 다방면의 장르를 아우르고 있는 본 저서의 각 장을 번역하기 위해선 아무리 도통한 과학자 겸 번역자라도 한 사람의 힘으로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몸 담고 있는 이광렬 박사는 약 30년 전 영국 캐임브리지대학교 내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대충 훑어보던 중, 인류지성사 전체를 두루 아우르는 장대함, 그와 더불어 ‘일반인들을 위한 지식 전달’에 충분히 부합될 만한 최상의 원고라 생각했다. 이광렬 박사는 한국으로 가져와 (세부 전공 분야는 모두 다른) 동료 과학계 친우들을 불러 모았고,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의견을 공유해가면서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의 이광렬 박사의 주도로 시작된 이 번역에는,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의 정병기 박사, 아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의 이순일 교수, 전 가톨릭대학교 수학과의 방금성 교수, 정형외과 전문의 박정수 박사가 투입되어 각자의 전공에 맞게 자신 있는 분야의 꼭지들을 나누어 작업하였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대로 이 책에는 과학과 문학을 연계하여 때로는 영시로, 때로는 문학가의 단상류로 지식을 설명한 내용도 상당 부분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애든버러대학교 영문학과의 정경심 박사의 번역, 그리고 국내 출간된 지식교양서를 다수 번역했던 김문영 번역가까지 총 7명의 전문가가 한 권의 책을 위해 수고했다.
이들 전문가 집단의 번역은 국내 독자들이 웬만해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 판단되는 키워드나 원리 설명 등이 있으면 ‘역자 주’를 통해서, 혹은 원전 기록에 약간의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막힘없이 읽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흔적은 언뜻 보아도 금세 그 신뢰도를 느끼게끔 한다. 이는 곧 책의 원 편저자가 처음부터 기획 의도로 삼았던 ‘대중을 위한 지식 전달’이라는 목표에도 성공적으로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