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싫은 아이와 재우려는 부모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매일 밤의 실랑이
늦도록 놀고 싶은 아이와, 빨리 재우고 싶은 부모님.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이라면 누구나, 수도 없이 겪었을 일. 큰소리도 내면 안 되고, 좋아하는 놀이도 못 하고…… 조용히 누워서 잠을 청해야 하는 밤이 싫다는 생각을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자주 할 거예요. 휴식이 간절한 어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인데 말이죠.
잠옷을 입으랬더니 느닷없이 스키복을 입겠다, 수영복을 입겠다질 않나, 산책을 하고 싶다질 않나, 급기야 눈을 가려보면 잠이 올 거라는 엄마의 말에 눈을 가렸던 손을 뗐다 붙였다 장난을 치질 않나! 토덜이를 재우고, 푹 좀 자고 싶은 엄마에게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길게 이어지는 토덜이의 투정을 딱 끊고, “이야기는 이제 그만, 밤에는 자야 해!”하고 단호하게 말하던 엄마는, 밤을 없애고 싶다며 훌쩍이는 토덜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줍니다. 그리고 방 한쪽에 작은 텐트를 만들어, 그 안에서 토덜이를 마주 보고 조곤조곤 설명을 해 주죠. 고요한 밤에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 몰랐던 밤의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면서 토덜이는 더 이상 밤을 벗겨 없애겠다고 말하지 않아요.
-밤이라서 더욱 빛나는 신비로운 색, 검은색을 아름다운 표현과 그림으로,
공감의 장면과 이해의 언어로
“하지만 밤에는 검은색 하나밖에 없는걸?” “그건 네가 밤을 찬찬히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래. 밤을 오랫동안 보다 보면 곰 인형의 보드라운 색도 보이고 창밖의 깊은 파란색의 하늘도 보일 거야.”
《난 동생을 먹을 거야!》처럼 《난 밤을 없앨 거야!》에도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헌사가 등장합니다. 아주 어릴 적, 밤을 없애고 싶어 하던 나의 아들 앨리아스에게 - 엘렌 - 글 작가 엘렌의 아들, 앨리아스는 밤도 싫어하고 밥도 싫어하는 토덜이 같은 아이였나 봐요. 프랑스의 어느 집 평범한 풍경과 일상의 흐름이 시모네 레아의 섬세한 터치를 통해 마치 하이퍼 리얼리즘처럼 현실적으로, 때로는 신비롭고 공감각적으로, 세밀하고 다채롭게 표현됩니다. 창밖이 어두워진 걸 보고 이미 투덜대기 시작하는 토덜이. 콩콩 점프하고, 돌아다니고, 버둥거리고,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토덜이, 그리고는 먼저 지쳐서 토덜이의 침대에 누워버린 엄마와(그러나 여전히 옆에서 지칠 줄 모르고 노는 토덜이!), 토덜이에게 조곤조곤 설명을 하며 마치 열반에 들기 직전의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엄마…. 그 마음을 알고도 남음입니다. (여기서 잠깐, 장면마다 엄마는 토덜이 곁에 딱 붙어 있는데 아빠는 왜 홀로 집안을 배회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 또한 가족의 이야깃거리가 되어도 좋겠어요!)
밤은 온통 검은색뿐이라 지루하다는 토덜이는 엄마의 설명을 듣고 다양한 온도와 명도의 검은색들을 찾아갑니다. 목마의 반질반질한 검은색, 고양이 별이의 폭신폭신 털복숭이 검은색, 토덜이가 매일 먹는 젖병의 축축한 검은색, 창밖의 달 언저리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검은색……. 토덜이는 전에는 미처 몰랐던 밤의 수백가지 빛깔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고요한 밤에만 할 수 있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새로운 밤이 올 때마다 새로운 다른 것을 궁금해할지도 모르죠. 그때는 또 토덜이에게 설명해 줄 기회가 있을 거예요. 밤은 휴식의 시간이고, 성장의 시간이라는 것, 잠을 자는 건 밥을 먹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요. 낮의 시간만큼이나 중요하고 모두에게 꼭 필요한 밤의 시간, 함께 《난 밤을 없앨 거야!》를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