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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비명

꽃의 비명

  • 이오우
  • |
  • 도서출판 등
  • |
  • 2024-08-30 출간
  • |
  • 152페이지
  • |
  • 130 X 205mm
  • |
  • ISBN 9791191992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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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평설〉

고요히 응시하는 길 위의 산책자

백애송


시를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사라지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혹은 불의의 것들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등등 각자의 방식으로 시를 쓴다. 이오우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크고 작은 삶의 흔적들에 대한 사유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시를 읽는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시인은 누군가를 혹은 어떤 사물을 사랑하는 것, 행복,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등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삶의 순간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마주하는 길 위에서 이를 몸소 실천하는 시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시를 통해, 시의 언어를 통해 마음을 옮겨적고 사유를 풀어낸다.
시인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과 풍경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 모습들이 똑같은 풍경으로 펼쳐지지 않고 시인만의 언어를 통해 은유적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시어로 빚어진 이번 시집에서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내적 성찰과 자연과의 공존 및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 시인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삶의 근간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에 시인의 따뜻하고 섬세함이 배어있기에 이를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여기에서 또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된다.


고요한 응시로 이루어낸 내적 성찰

시인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 추구해야 할 진리는 무엇인지 생각한다. 인간은 본디 진리가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존재이다. 이에 시인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내가 존재하는 세계를 들여다보며 적극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자신이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내적 성찰을 통해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 타인을 이해하는 광의의 범위로 확장된다.

웃음꽃을 피우며 나무와 대화하자
바람을 껴안고 푸른 하늘을 만지자
그대 앞의 모든 존재를 사랑하자
그리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감을 알자

햇살의 마음으로
봄에는 봄을 여름에는 여름을
가을에는 가을을 겨울에는 겨울을 즐기자
음양을 고르게 다스리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벗어나
그대 생일에 시집 한 권을 사자
아름다움의 산사태를 겪어보자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픔과 대면하자

풋풋한 생활의 열매를 알아차리자
난 어제도 꿈을 꾸었다 꿈속의 꿈을
난 오늘도 꿈을 꾸리라 꿈 아닌 꿈을
난 내일도 꿈을 꿀 수 있을까 꿈 같은 꿈을

난 꾸리라 삶이란 도원의 꿈
모두가 내가 꾸미는 꿈임을 알리라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의 숨결과
막사발의 꿈을 꾸리라
- 「행복의 조건」 전문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하기 위해 아주 거창한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에 조건이 달린다면 진정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인이 생각하는 행복은 역행하지 않고 순리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웃음꽃을 피우며 나무와 대화”하고 “바람을 껴안고 푸른 하늘을 만지”며 눈 앞에 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감을” 잊지 않는 것이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음을 뜻하지만, 이때의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남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의미한다. 씨앗이라는 생명을 품고 있는 장소가 바로 흙이지 않은가. 흙은 씨앗이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고 “햇살의 마음으로/ 봄에는 봄을 여름에는 여름을/ 가을에는 가을을 겨울에는 겨울을 즐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음양을 고르게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시인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강도로 악당의 전형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심리학적 용어로 자신만의 원칙이나 기준을 정해놓고 다른 사람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을 이른다. 이를통해 시인은 자신의 생각이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생각만 진리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함을 깨우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하는 아집과 독단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시인은 이를 막기 위해 생일에는 선물로 “시집 한 권을 사”는 것은 권한다. 시집을 통해 시어가 이루어낸 “아름다움의 산사태를 겪어보”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픔과 대면”하다 보면 행복이라는 것이 아주 멀리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집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시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꿈을 꿀 것이다. “풋풋한 생활의 열매”로 빗은 “삶이란 도원의 꿈”을 말이다. 꿈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고 소박한 것들로부터 모두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행복은 “내가 꾸미는” 이 작고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비롯되는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한 송이
함성으로 왔다
한 떨기
비명으로 가는
꽃은 시들어 詩 들어
마침내, 씨 들다

구름 따라 피는
한 송이 꽃처럼
가슴에 꽂히는
한 떨기 눈물 같은 시를
뜨거운 울음을

그대 가슴에
새기고 싶다
- 「꽃의 비명」 전문

시인은 길 위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꽃이 피었다 지는 꽃의 일생이 인간의 생애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씨앗이 물과 온도 등 적절한 환경을 만나 발아가 되면 뿌리가 먼저 흙 속으로 뻗는다. 땅 밑으로 뿌리가 먼저 뻗어나간 그 후에 위로 줄기가 자라기 시작하고, 광합성을 통해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 꽃을 피운다. 이 꽃의 꽃가루가 바람이나 나비, 벌, 새 등에 의해 다른 꽃의 암술에 옮겨져 수정이 이루어지면 수정된 꽃은 열매라는 결실을 맺는다.
여기 시인의 눈에 들어온 한 송이 꽃이 있다. 꽃은 “한 송이/ 함성으로 왔다/ 한 떨기/ 비명으로” 간다. 위와 같이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내고 겨우 피워낸 한 송이 꽃. 피어 있는 순간은 잠깐이었다가 고개를 떨구고 절명하고 만다. 하지만 꽃은 꽃송이가 꺾였다고 생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꽃은 시들어가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씨’를 마련해 놓기 때문이다. 또한 시들어가고 있는 꽃을 지켜보다 이 안에 “詩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한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들어가는 꽃에서 詩의 씨앗을 발견하였고, 마침내 꽃은 시인이 조탁한 언어에 의해 詩로 변모하였다.
꽃이 ‘씨’를 만들어놓았다면, 시인은 “한 떨기 눈물 같은 시를” 남기고자 한다. 이는 시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다음 세대에도 널리 읽힐 수 있는 “가슴에 꽂히”고 “뜨거운 울음”을 꿈꾸는 시 한 편 말이다. “그대 가슴에” 이러한 뜨거운 시 한 편 새길 수 있다면 행복한 비명일 것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날
그러나 다시 오지 않을 날
그런 날, 꼭 잡아요

날 잡아요
오늘을 잡아요
오늘과 살아요

사랑하기에도 짧은 날
꽃보다 짧은 인연
다시 오지 않을 날
- 「오늘」 전문

위의 시는 순간의 소중함에 대해 일러준다.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오늘은 현재 이 순간을 경험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버리면 우리는 ‘오늘’을 다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라고 생각하고 오늘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시인은 ‘오늘’을 꼭 잡으라고 말한다. 오늘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날”이면서 동시에 “다시 오지 않을 날”이다. 시인은 그런 날을 꼭 잡으라고 한다. 오늘을 잡아서 오늘과 살라고 말이다. 오늘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종일 “사랑하기에도 짧”고, “꽃보다 짧은 인연”이기에 “다시 오지 않을 날”이다. 실제 오늘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보다도 짧다. 내가 포기한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귀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한 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오늘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현재의 순간에 충실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연과의 공존

자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벗삼고자 하는 마음에는 불온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고 이에 동화하며 자연 앞에서 겸손함을 익힌다. 이에 시인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들만의 질서를 존중하고자 한다. 대자연 앞에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자연과 인간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다른 종들의 생명도 위태로워진다. 자연의 경이로운 질서를 통해 삶의 질서 또한 회복하고자 한다. 다음의 시에서는 자연에서 왔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에 거처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 거쳐 가는 거지요

오늘 어쩌다
상가에 조문하고
왔습니다

한잔 걸치고 왔지요

걸어 걸어가다 보면
다시 만날 날 있겠지요
- 「거처」 전문

이승에 居處하였던 누군가가 운명을 달리하였고, 이에 시인은 “상가에 조문 하고” 왔다. 이를 통해 시인은 “인생에 거처가/ 이디 있겠”는가 라고 물으며, 이 세상은 “다 거쳐 가는” 것이라는 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 시에서 ‘거처’는 두 가지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하나는 ‘居處’로 일정하게 거주하는 공간인 집이나 주거지의 의미이다. 이 거처가 있음으로 인하여 쉼을 얻고 마음의 평안을 누린다. 다른 하나는 ‘去處’로 이미 갔거나 미래에 가야 할 곳으로 우리가 미래에 당도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도해야 하는 삶의 궁극적인 거처는 어디일까. 아마도 자연일 것이다. 만물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성장하며 머물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죽음을 통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다 거쳐 가는” 것이기에 이처럼 결국은 순환하여 “걸어 걸어가다 보면” 또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다. 시인은 “거처 가는” 인생이지만, 이왕이면 이승에 居處하는 동안은 누군가에게 안온함을 줄 수 있는 거처가 되기를 바란다. 삶은 사전에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개인이 만들어가는 삶의 거처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다. 힘들 때 위로 받을 수 있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 자신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할 것이다.

햇살의 혀끝으로
꽃을 새기고 움이 돋는다

기운생동이란 이런 거다
맥동하는 수천수만의 움들

새로움
아름다움
경이로움의 움들
찬란한 싸움의 자리

봄 풍경을
완성하는
푸른 낙관
- 「움」 전문

위의 시는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일부를 시의 언어로 그래도 옮겨놓았다. 일상에 묻혀 미처 발견하지 못하였던 자연의 한 장면을 시인은 놓치지 않는다. 봄이 선사하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이 공감하도록 한다. 봄날 “햇살의 혀끝”을 통해 움이 돋아나고 있다. 이보다 더 “기운생동”하는 표현이 있을까. 실제 움이 돋는 것도 기운생동하지만, 비유적인 표현 또한 기운생동한다. 새롭고 아름다우며 경이로운 움들이 “찬란한 싸움”을 한 그 자리 “봄 풍경을/ 완성하는/ 푸른 낙관”이 있다. 여기에서 싸움은 상대방을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싸움이 아니라, 봄의 햇살 아래 여기저기에서 서로 다투며 돋아나는 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자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서로 함께 상생하고자 한다. 자연이 선사하는 생동감 있는 봄 풍경의 한 장면이다.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

내면의 탐구를 통한 내적 성찰이 도달한 곳은 물질이 아닌 정신이다. 이오우 시인의 시를 들여다보면 물질적 소유보다 비물질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인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물질적으로 욕망하고자 하는 것들이 늘 유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정도의 길을 걷는다. 물론 물질이 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내적인 평온함에서 진정한 행복이 나온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한 삶의 가치를 이룬다는 것을 시인은 아는 것이다. 다음의 시는 자연 속에서 물질에 의해 즉, 자본주의에 의해 변화해가고 있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논물 가두는 일은 맑고 푸른 하늘이 들어와 박히고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모으는 것, 무논의 호수는 별빛을 담는 그릇이 되고 모를 심는다는 것은 하늘을 담은 그릇에 생을 이식하는 작업, 한 포기 한 포기 모를 꽂아 넣을 때 나긋나긋한 햇살과 개구리와 거머리와 익숙한 장딴지가 첨벙대며 생의 낱장을 섞어 휘저으며 한통속이 된다

모판을 나르는 날은 큰 밥그릇에 양식을 퍼 담는 날, 두레상에 모여 나눔의 밥상을 차리는 날, 구름과 감꽃들 사이로 제비 날아가는 하늘을 담는 날, 한 톨의 소중함을 그리는 날, 노동요의 소망과 설움이 그 물빛과 함께 섞이는 날, 꿈의 반영 같은 것

그러나 지금은 노랫소리 사라진 논에 엔진소리 요란타, 그 물빛에 46층 아파트가 거꾸로 박혔다 불나방 같은 불빛만 가득하다, 자본의 반영 같은 것
- 「반영」 부분

과거 우리나라는 공동체를 중요시하고 정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물질적으로 점점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성향이 만연하고 있다. 이에 시인은 ‘반영’에 들어 있는 의미를 종합하여 현 상황에 대해 보여주고자 한다. 이 시에서 ‘반영’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반영은 논물 속 비치는 풍경의 반영이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잡아놓은 논”에 담긴 “흙빛 물의 육체에 담긴 하늘과 야산과 버들강아지와 멧비둘기의 울음들”이다. 논에 물을 “가두는 일은 맑고 푸른 하늘이 들어와 박히고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모으는 것”이다. “무논의 호수는 별빛을 담는 그릇이 되고 모를 심는다는 것은 하늘을 담은 그릇에 생을 이식하는” 숭고한 작업이다. 두 번째 반영은 3연의 “꿈의 반영”이다. “모판을 나르는 날은 큰 밥그릇에 양식을 퍼 담는 날”로 서로 “나눔의 밥상을 차리는 날”이다. 하늘도 담고 쌀 “한 톨의 소중함을 그리는 날”로, “노동요의 소망과 설움이 그 물빛과 함께 섞이는 날”이다. 한 해 곡식이 잘 여물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한데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반영은 4연에 있는 자본의 반영이다. 지금 논에는 노동요 대신 “엔진소리”만 요란하다. 하늘과 산과 같은 자연을 담았던 논물에는 “36층 아파트가 거꾸로” 박혀있고, “불나방 같은 불빛만 가득하다”.
시인은 이와 같이 ‘반영’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충만한 의미를 부여한다. 논물 속 비치는 풍경의 반영이자 꿈의 반영, 자본의 반영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공동체적 삶의 의미는 사라지고, 현대사회는 자본 그리고 그에 대한 욕망이 가득하다. 시인은 논물에 반영되어 보였던 맑고 순수한 정신적 가치 대신 고층 아파트의 화려한 불빛만 자리하는 현재의 상황을 첨예하게 인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자본에 물들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물질적 기능보다 정신적 가치가 더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한다. 정신적 가치를 아는 사람은 물질적 소유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논리에 갇혀 편리함에 길들어진 현대인에게 불편함은 이제 용납하기 어려운 악이 되어버렸다.

탐욕이 자본이라는 괴물을 낳아 기르고 있다
욕망이 무너지는 날 돈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저희끼리 돌고 돌며 행복한 웃음을 뿌리며
달동네 꽃동네를 마음껏 돌아다니지 않을까

그제는 고향 친구의 부친상에 조문하고 발인을 보았다
리무진 영구차, 대리운전으로 먼 길 떠나셨다
- 「대리운전」 부분

평화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로 남아 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평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물질주의 즉 자본이 평화를 대신할 수 있을까. “1차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는 “평화를 부르짖게” 되었다. “세계는 참혹한 전쟁을 통해 평화를 낳았”지만 “평화는 정작 승전국의 전리품에 불과”할 뿐, “자본의 평화”, “민주의 평화는 더욱 우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젊은 사내’에게도 평화는 다름 아닌 ‘돈’이다. 여유가 없는 삶이 안타까워 보이는 것은 단지 시인의 마음일 뿐, 사나에게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현대사회는 “탐욕이 자본이라는 괴물을 낳아 기르고 있다”. “욕망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이 죽고 나면 돈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청년을 언제쯤 알게 될까. 아무리 물질이 좋다고 하지만 죽음의 순간이 오면 모든 것이 소용없어진다. 심지어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이 대리로 운전해주는 타인의 손에 의해 삶을 마무리한다. 살아있는 동안 아무리 물질을 쫓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돌아갈 때는 빈손이다. 이 시에서 역시 경쟁을 강요하고 개인을 중요시하는 물질주의에 대해 시인은 경각심을 갖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의 내면을 지탱하는 힘

시인의 뿌리인 어머니는 “파스 없인 못”(「파시 즘」) 사는 분으로 “한 해의 절정, 하지”에도 “생명의 최전선 밭고랑을 지키는” 아직 “노장은 죽지 않았”(「하지夏至」)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시다. 시인의 나이가 오십이 넘었으니 시인의 어머니는 고희 즈음일 것이라 생각된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한 것처럼 시인의 어머니도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시다. 평생을 밭에서 살았으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인이 어렸을 적 바라보았던 어머니의 모습과 오십이 넘어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거뜬히 해내던, 언제까지나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느새 파스 없으면 못 사는 모습으로 쇠잔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시인은 이러한 마음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이야기한다. 여기에서는 시인의 근간이자 뿌리가 되는 어머니에 관련된 시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 어머니, 파스 없인 못 살아
거 있잖냐, 올 때 시내, 약국에서 파시 즘 사오너라
시원찮은 거 말고 차악 달라붙고 오래가는 거로,
너무 비싼 거 말고 알지, 뭐 말하는지

알다 뿐인가, 파시가 아니라 파스라는 놈
장이 파하듯 몸도 파한 것이죠
파스 좀이 아니라 파시 즘 사오라고 일러 붙이고
어머니는 다시 밭고랑에 모종 심으러 갔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파스는 파시다
파시즘보다 더 강력한 파스의 힘이
어머니 허리와 무릎을 지탱한 지 오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차악 달라붙어
오래오래, 쑤시는 곳을 더 쑤시게 하는 파시즘일지 몰라
어쩌면, 우리는 파시즘의 위약 효과에 빠져
절뚝거리며 살아가는 헐거운 정신일지도 몰라
- 「파시 즘」 전문

파시즘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의 성향의 운동으로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시는 이런 ‘파시즘’에 기대어 어머니의 ‘파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이 파하듯 몸도 파한” 어머니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애잔함도 보여준다. 시인이 집에 올 때면 “파스 없인 못” 사는 어머니는 “거 있잖냐, 올 때 시내, 약국에서 파시 즘 사오너라/ 시원찮은 거 말고 차악 달라붙고 오래가는 거로” 주문을 하신다. 시인인 아들이 어련히 사 가지고 갈 텐데 뒤에 한 마디 덧붙이신다. “너무 비싼 거 말고 알지”라고 말이다. 자식위해 쓰는 돈은 아깝지 않지만, 자식의 주머니 돈을 쓰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어머니에게 “파스는 파시다”. “파시즘보다 더 강력한 파스의 힘이/ 어머니 허리와 무릎을 지탱한 지 오래”이다. 파스를 붙이면서까지 “다시 밭고랑에 모종 심으러 갔을” 어머니의 삶을 감히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시인과 어머니는 “서로에게 차악 달라붙어/ 오래오래, 쑤시는 곳을 더 쑤시게 하는 파시즘일지” 모른다. “파시즘의 위약 효과에 빠져/ 절뚝거리며 살아가는 헐거운 정신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게장 담그셨네

꽃게 아드득
짭짤한 게장에
밥 한 공기 뚝딱
먹어 치웠네

어버이날
난, 꽃게처럼
딱 그 모양으로
세상에서 가장 짜고
딱딱한 삶을 씹었네

쪽쪽 쭉쭉 빨아먹고
냅다 뱉어버린 것들
개밥 그릇에 담겼네

나는 어머니를
맛나게 먹어 치웠네
- 「꽃게」 전문

어머니는 좋은 일이 있어도, 궂은 일이 있어도 아들 생각을 제일 먼저 한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시의 배경으로 미루어보아 어버이날 시인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게장을 담그셨고, 아들은 “짭짤한 게장에/ 밥 한 공기 뚝뚝/ 먹어 치웠”다. “어버이날” 시인은 “꽃게처럼/ 딱 그 모양으로/ 세상에서 가장 짜고/ 딱딱한 삶을 씹었”다. 아직까지도 어머니의 희생을 먹고 사는 시인은 “어머니를/ 맛나게 먹어 치웠네”라고 표현한다. 실제 어머니를 먹어치웠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어머니의 삶을 갉아먹고 있음을 내포하는 표현이다. 육십이 되어도, 칠십이 되어도 부모에게 자식은 물가에 내놓은 마냥 어린아이인 것이다. 과거에는 밥이 곧 보약이었고 삶이 원동력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하루 세 끼 꼬박 잘 챙겨 먹는 것이 가장 으뜸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시인의 어머니 역시 나의 자식에게 먹이기 위해 한 끼라도 더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삶이라는 길 위를 서성이는 이오우 시인은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생이란 “어떤 악조건에서도/ 뿌리를/ 벋는”(「아카시아꽃」) 법이고, “미래를 모르는 한/ 인생은 어차피 방황/ 잠깐의 여행길”(「4인칭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라는 이 여행길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으려면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여다보며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억하고 발견하려는 것은 삶의 의미를 더 충만하게 한다. 이에 이오우 시인은 삶을 조용히 응시하고 내적 성찰을 통해 자신이 먼저 발견한 삶의 진리를 보여주고자 한다. 나 혼자 가는 먼 길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가는 공존의 길을 택함으로써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삶을 꿈꾼다. 지속가능한 삶 속에는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과 시인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도 포함된다. 시인이 먼저 몸소 체득하여 보듬고자 하는 길 위의 삶에서 얻은 진리는 시집 곳곳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빚어낸 언어로 발휘되어 있다. 시인의 길 위의 산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목차

제1부

행복의 조건
꽃게
오후가 커피를 마신다
유년의 지도
진다
첫눈이
천년의 꽃
봄 엽서
새가 된 물고기
눈발
까치집
오늘
인간아
금싸대기 대화
겨울 蓮歌(연가)
봄 마중

제2부

뉴턴을 생각하며 나눈 대화
꽃의 비명
삽목의 이유
생의 순간에서
보이지 않는 손
모닝 커피
서천갯벌
멧비둘기
안절부절
파시 즘
푸른 이빨
겨울 앞에서
고양이 혓바닥
단풍 들자
옥수수
널 부른다

제3부

겨울 나그네
훌러덩
원고지 소작농
까마귀
마지막 멘트
구름꽃
지정학적 나이, 어르신
꽃멀미
우주먼지
코스모스 피는 봄날
눈 내린 날 아침
대리운전
아카시꽃
때론
엘리스 죽이기
치유

제4부

아랫목
여행
낮달
종의 기원
해를 안으며
멀찌감치
소요하다
4인칭 시점
연리지
개미
타인의 취향
전하다
거장의 귀
하지夏至
일요일 아침
이별 그늘

제5부

목마름의 기억
일요일 오후
첫 비행
햇살 무덤
완벽한 시간
시인의 잠
반영
실마리
방황의 진화

거처
든든
하얀 나비
궁금
알밤
이건 뭐지

해설 / 백애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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