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필자가 서명응과 서유구의 학문 활동을 다룬 논문을 모은 것이다. 기왕에 발표한 논문들을 단행본으로 묶으면서 서론과 결론은 새로 작성하였다. 서론에서는 서명응과 서유구가 활동했던 조선 후기 중앙학계의 학풍을 개괄적으로 소개하였다. 여기에서는 조선 후기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조선중화주의’와 고증학 및 서학의 도입, 수도권의 도시화와 이에 대응하여 나타난 경세학을 다루었다. 이는 두 사람이 활동한 시대적 배경에 해당한다.
제1부는 ‘서명응의 학문 활동’으로, 그의 생애와 교유 인물, 규장각 활동, 저술의 종류와 특징, 기자 인식, 세계지리 인식을 다루었다. 서명응은 정조 초년에 규장각 기구를 정비하고, 국가적 편찬 사업에서 핵심 실무자로 활동하여 그의 아들과 손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과 서명응이 남긴 27종의 저술을 개략적으로 소개하였다. 그리고 기자 인식에서는 『기자외기』와 『주사』, 세계지리 인식에서는 『위사』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서명응의 학문이 가진 특징을 정리하였다.
제2부는 ‘서유구의 학문 활동’으로, 그의 규장각 활동과 관리 생활, 지역 인식, 수원 유수 활동을 다루었다. 서유구는 정조 시대에 규장각이 주관한 많은 출판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19세기에는 지방관으로서 주목되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지역 인식에서는 「의상경계책」, 수원 유수 활동에서는 『화영일록』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서유구가 농정을 개혁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강조하였다.
결론에서는 서명응과 서유구의 학문에 나타나는 특징을 정리하였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로 가학적 전통을 계승한 측면이 있고, 정조가 건립한 규장각을 중요한 활동 무대로 삼았기에 많은 공통점이 나타난다. 그러나 두 사람이 활동한 시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고, 학문적 관심에도 다른 점이 있어 각자의 개성이 나타난다. 필자는 이러한 두 사람의 학문이 당대의 조선학계를 주도했던 지식인의 학문적 정보와 경세적 관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