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김조은 시인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시를 생각하는 자신을 “문장 한 줄 훔쳐다가/길들지 않은 상념(想念)을 묶어내는/구멍 숭숭 뚫린 소행성”(「소행성」)으로 은유하고 있다. 윤기 나는 시를 지어내지도 못하면서 은하를 떠도는 자신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소행성으로 은유하고 있을까. 시인이란 이름을 지고 가는 일이 이토록 고단한데, 왜 포기하지 못하고 순정을 다하는 것일까.
흔히들 문학 치유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시 쓰기는 독자를 치유하기에 앞서 자신의 남루와 결핍을 보완하고 치유하는 기능을 갖는다. 지독한 가난을 딛고 일어섰지만 그 시절의 아픔이 뭉글뭉글 찾아들 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을 때, 부모 혹은 지인에게 잘못했던 일이 송곳처럼 쑤셔올 때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재현해 내고 나면 카타르시스와 위로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시를 잉태하게 만드는 정서를 한(恨)이라고 한다면, 시인은 한의 정서가 짙게 내재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조은 시인은 전후 세대 대부분의 여성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과 성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 같은 한이 그의 시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습적 규범에 굴복하지 않고 바윗장처럼 일어서 맞서는 동안 형성된 철학과 가치관이 또 한 주류를 이루기도 한다. 근대한국사를 가로질러 삶을 개진해 온 베이비부머, 김조은 시인이 혼신으로 뽑아 올린 시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책장을 넘기면
삼킬 수 없는 낱말이 어김없이 걸리고
때때로 반사된 빛은 사물에 부딪혀 튕기는데
햇살에 고개 들이밀어 얼굴 부풀리는 해바라기처럼
기도로 빛을 모으면 싱싱하게 꿈틀대는 보리 새싹,
나무의 옆구리까지 말끔히 소독하는 땡볕,
얼음장 속에서도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빙어 새끼들
나는,
왜 빛을 탐할까
낱말들의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어
잠들지 못하는 밤
반쯤 열린 창으로 빛이 어른거린다
빛의 비밀을 풀기 위해
하나의 줄을 잡고 흔들어댄다
순간,
출렁이며 일어서는
푸른 파동
- 「빛을 탐하다」 전문
인용 시 「빛을 탐하다」는 시를 잡기 위한 고투가 생생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학업을 늦게 만났듯이 시도 그즈음 동무한 듯한데, ‘시인의 말’에서 고백한 것처럼 “바람결 사이/고즈넉이 스며들어//그리운 산빛인 듯, 끈끈한 물빛인 듯//홍시 한 알”로 익어가는 목숨이 시였을 것이다. 삶의 중앙에 시를 들여놓고 튼실한 생명으로 키워내기 위한 고심은 불면을 불러오기 마련, 그러한 상황을 이 시는 잘 그려내고 있다.
시를 잘 쓰려고 이론서를 읽고 좋은 시집을 펼쳐 들어도 문맥이 파악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삼킬 수 없는 낱말이 어김없이 걸리고/때때로 반사된 빛은 사물에 부딪혀 튕기”기도 하면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햇살에 고개 들이밀어 얼굴 부풀리는 해바라기처럼/기도로 빛을 모으면 싱싱하게 꿈틀대는 보리 새싹”이 보이고, “나무의 옆구리까지 말끔히 소독하는 땡볕”과 “얼음장 속에서도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빙어 새끼들”이 보인다.
이와 같은 형상화는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열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인의 상상력 속에 등장한 사물의 구체적 모습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즉, 기도하듯 시를 생각하면 “꿈틀대는 보리 새싹”과, “땡볕”, “빙어 새끼들”이 떠오르는데, 이들은 행간에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객관적 상관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잠들지 못하고 빛을 탐했을까. 그것은 “낱말들의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면서 시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빛’은 ‘좋은 시’를 의미하는데, “빛의 비밀을 풀기 위해” “반쯤 열린 창으로” “하나의 줄을 잡고 흔들어”대면 “푸른 파동”이 “출렁이며” 다가온다. 여기서 ‘하나의 줄’은 시를 구상하고 형상화하기 직전, 실마리가 되어주는 시어 혹은 첫 행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어 한 가닥을 잡은 순간, 시가 통째로 굴러들어 온 것이다. “푸른 파동”이란 구절에서 ‘푸르다’의 색채 이미지는 싱싱한 생명과 희망을 의미하고, ‘파동’ 역시 역동적인 생명력을 함의하므로 희망을 예감할 수 있는 여운이 남는다.
이 부분을 다시 한 번 해석하면, 시어가 미세하게 감지될 때 창을 열어젖히자 시가 출렁이며 안겨들었다거나, 더 쉽게는 불면의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시는 독자에게 전해지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뿐, 어떤 해석이 옳은가라는 정답은 없다. 주제가 뻔히 드러나는 것보다 시는 다층적으로 읽히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 안현심(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