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미술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
강고했던 인식 체계에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과학에서 가장 어렵다는 인식과 차원을 다루는 영화 〈인셉션〉과 〈인터스텔라〉는 유독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뜨거웠다. 또한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도슨트도 늘어나는 추세다. 모두 반가운 일이다. 일상이 바쁜 현대인에게 과학은 무겁게, 미술은 자칫 여유롭게 느껴지는 주제일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중의 과학적 소양은 의외로 탄탄하고, 미술을 향유하는 인구 역시 날로 증가하고 있다.
서구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학문과 문화의 많은 부분이 신의 관점에 치우쳐 있던 것에서 벗어나, 인간의 합리성에 기초하며 번성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해부학 실습과 과학 강연은 더 이상 귀족 계층의 지적 호기심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작가는 오늘날 과학과 미술을 향한 대중적 관심 역시 개인의 삶과 질을 높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확신했다. 오로지 공직에서 30년을 몸 담으며 그는 후진들의 세상에 간섭하는 대신 영감을 주는 선진이 되길 바랐다. 과학과 미술 두 분야가 의외로 상통하는 점이 많다는 점을 발견한 작가는 두 분야를 연결해 이를 책으로 담아내기로 했다.
세상을 조각 내어 바라보지 않기
과학과 미술의 공통 기반, 기하학
작가는 책의 도입부에서 미술의 기원과 원근법의 탄생을 과학과의 상관성과 연결 지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한때 자연철학에 속해 있었다. 기하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중세에 잠시 중단되었던 학문적 연구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부흥을 맞았다. 인간의 합리적인 추론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하학이 환영받은 것이다. 공간의 학문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기하학이 발달하면서 점성술은 천문학으로, 천동설은 지동설로 대체됐다. 소위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었다.
한편, 르네상스 미술에서도 수의 비례는 유용하게 작용됐다. 선원근법이 그 예다. 절대 다수가 문맹이던 라틴 유럽에서 그림은 문자의 역할을 대신했다. 정확한 비례에 입각해 착시에 가까운 입체감을 유도해 내어, 회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이 실린 것이다. 그리하여 장인에 지나지 않았던 화가는 예술가로, 미술은 엄연한 학문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이 책은 두 분야가 공통적으로 기반 삼은 기하학을 다루며 각 학문이 조각조각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큰 흐름으로 이어져 있음을 흥미롭게 안내하고 있다.
언제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은 지난하다
역사 속 과학과 미술이 추구했던 본질
과학에 관해 새로운 탐구가 이루어질 때면 탐구 그 자체보다는 논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더욱 험난했다. 이는 천문학, 의학, 화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마찬가지였다. 기존 인식 대신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지려면 한 세대가 교체되어야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는 유럽에서 새로운 학설을 펼치려면 때로는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부터 케플러, 갈릴레이 그리고 뉴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우주에서 신의 섭리를 발견하기 위해 탐구를 시작했다. 그들이 도출한 결론은 성경과 대척점에 섰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어찌 번민이 없었겠는가. 지금이야 성경이 과학적 가설로 차용되는 일이 없지만, 그때는 과학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은 시대였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고자 대중을 설득했다.
작가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 기여한 과학자들의 여정을 안내하며 한 시대를 지배했던 과거의 이론(천동설, 점성술, 연금술 등) 역시 결코 경시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이 전환되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연구한 이전의 패러다임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 역시 수학적 비례를 바탕으로 사실적 묘사를 중시하던 풍조에서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요소들을 조명하는 것으로 범주를 넓혀갔다. 작가는 이처럼 변화를 이루어 온 과학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하면서 일맥상통한 흐름 속에 있었던 미술 작품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철학적 문제로 나아가다
두 분야의 현재 그리고 미래
과학과 미술 두 분야 모두 자명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학문과 사실의 발견은 가치중립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분야에는 인간의 가치관이 작동하기 마련이다. 세계 각국의 철도, 댐 건설 등에 사용하고자 개발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는 전쟁에도 활용되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대중은 과학에도 좋고 나쁜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무차별적으로 수많은 인간이 희생되었던 핵폭탄의 등장이 그러했다. 작가는 이런 역사 속 과학에 기반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 어렵다고 인식할 만한 과학적 이론을 쉽게 다루고 있고, 이를 미술로 승화한 살바도르 달리 등의 작품을 통해 재앙을 바라보는 인류의 철학관을 함께 녹여냈다. 그뿐 아니라 먹이사슬 맨 위에 선 포식자이자 여섯 번째 대멸종을 주도하고 있는 인류의 향후 과제를 개괄적으로 제시했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독자들은 어느새 과학과 미술에 관한 지평이 넓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인류와 미래에 대해 고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