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미 또 하나의 ‘신화’라 할 수 있다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미 또 하나의 ‘신화’라 할 수 있다. 그 신화는 긍정적인 열광과 지지뿐 아니라 부정적인 비난과 적대와도 결합하며, 이 상반된 감정들을 재생산하고 증폭시키는 매개가 된다. 하지만 이 책은 김대중을 전적으로 사적인 인간이거나 영웅적 서사의 주인공이거나 역사의 전지적인 관찰자로서 묶어두는 대신에, 역사의 ‘단절’ 내지 ‘변곡점’을 추동한 실천적 주체이자 변인으로, 또는 특정 시대의 집단의식으로, 나아가 그의 정치적·정책적 성과들로 평가되는 사안, 사건들에 연결된 복수의 결절점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입장에 있다. 그가 스스로 설정한 정치인의 위치는 “국민과 시대에 앞서가지 않고, 민중의 반걸음 앞을 걷는” 것이었다. ‘김대중 리더십’을 대변하는 이 표현은 그가 정치인의 위상과 역할을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경합, 긴장, 갈등, 충돌, 협상 등을 끊임없이 벌이면서 특정한 ‘시대’를 형성하는 사회적 관계망의 한가운데”서 찾았으며, 의식적으로 정치인과 민중 사이의 보폭을 맞추고자 한 것을 말한다. 고작 ‘반걸음’이지만, 김대중이 하나의 변곡점을 상징한다면, 그 변곡점은 개인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집합적이고 시대적인 지평으로서 조망되어야 마땅하다.
김대중에게 문화는 단순히 창달의 대상이 아니라, 21세기에 전략적으로 키워야 할 국가 기간산업, 미래의 먹거리로서 ‘문화산업’을 의미했다. 미래에는 자본, 노동, 토지가 아닌 정보와 지식 그리고 창의력이 핵심이 되는 것이므로, 그 미래 설계의 핵심정책 가운데 하나로서 문화산업, 관광산업을 설계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투자를 통해 문화산업, 관광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키워나갔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지식과 문화가 국력”이라면서, “문화는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21세기는 한국의 세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우리 문화의 고유성과 창조성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물과 공기처럼 자유롭고 또 자연스럽게 발휘되도록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김대중의 문화와 문화정책에 대한 철학과 사상, 그것을 실천한 정치, 정책에 대해 학문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평가한 것이다. 김대중의 문화와 문화정치, 문화정책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첫 학문적·체계적 시도이며,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김대중의 문화정치와 문화정책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뒤를 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