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한 책 어워드 수상
★『오: 매거진』 『시인&작가』 글쓰기 분야 최고의 책
“거대한 절도, 표절, 스토킹…”
회고록을 쓰는 건 위험한 일
우선 회고록 작가에게는 필연적으로 도덕성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타인의 삶을 글의 재료로 삼기 때문이다. 글감이 되는 이들에게 사전 동의를 구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삶이 조형된다는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회고록 작가에게는 자기 가족, 친구, 이웃이 글에 묘사된 자기 모습을 보고 느낄 감정에 대해 통제할 권한이 없다. 베스 케파트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발생할 극단적인 사태에 대비해 이렇게 경고하기까지 한다. “회고록은 책 속에 쌓아둔 다정함”일 수도 있지만, “거대한 절도, 표절, 스토킹의 한 종류”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 글의 구조를 견고하게 짤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기존에 출간된 훌륭한 회고록들이다. 회고록을 쓰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내털리 쿠시의 『로드 송』은 올바른 세부 사항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세부 사항 사이에 여유를 주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마이클 온다치의 『가문에 흐르는』은 파편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억은 완벽할 수 없지만, 온다치는 완벽하지 못한 기억이 ‘온전함’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린 스트라우스의 『인생의 반』은 여백을 가르쳐준다. 마크 리처드의 『기도자의 집 2』는 친밀한 이인칭 산문체가 어떤 효과와 아름다움을 띠는지를 펼쳐 보인다.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즈』는 회고록이 타인의 진실성과 사생활을 얼마나 잘 지켜줄 수 있는지, 그런 넉넉한 공간의 탄생은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제프리 울프의 『기만의 공작』은 용서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벨 훅스의 『본 블랙』은 반복되는 말의 힘을 증명한다.
목소리는 분위기이자 태도
“지금을 기록하면서 목소리를 훈련하라”
무엇보다 회고록은 예술작품이다. 독자는 회고록을 읽고 충격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은 회고록 작가가 오랜 시간 치열하게 분투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책을 집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회고록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우선 써라. 일기와 기록, 사진, 인터뷰는 회고록의 중요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쓸 때는 세부 사항과 사실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저울질해야 한다. 만약 회고록을 쓰는 이가 끝없이 확인하며 불안해하는 성격이라면 장점이 될 수 있다.
지금을 기록하라. 그리고 다채로운 목소리를 내도록 훈련하라. 작가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그게 곧 분위기이자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구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시제 선택에 있다. 현재시제로 서술한다면 직감적이고 즉흥적인 리듬이 부여될 것이다. 반대로 과거시제를 쓴다면 감각보다는 지혜롭고 도덕적인 분위기를 풍길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면 그 시간의 간극 속에서 앎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루는 사건이 드라마틱하고 극적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회고록은 오늘 일어난 일기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돌아보며 쓰는 것이므로 깊이를 담보해야 한다. 예컨대 게일 콜드웰의 회고록 『먼길로 돌아갈까?』는 친구 캐럴라인 냅의 죽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죽음 후에 받아들인 나의 고통에 관한 기록이다. 회상은 사건 자체를 가리키기보다 지나온 터널 속에서 응축된 시간과 감정을 펼쳐 보여주는 힘을 지닌다.
저자는 회고록을 쓰려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반쯤 기억나는 일도 쓸 수 있는가? 그때의 풍경과 날씨, 색채와 맛을 기억하는가? 당신이 쓴 글로 인해 평생 꼬리표가 달린다면 그 심정은 어떨 것 같은가? 진실의 언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가?
회고록에 관한 흔한 오해 몇 가지
더 깊은 앎으로 한발 다가서는 글쓰기
회고록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독자는 그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설득력 있는 글이 될 관건은 보편성에 달려 있다. 그러면 어떻게 보편성을 구현할까? 그것은 때로 대명사를 써서 해결되기도 하지만, ‘진실’하게 씀으로써 해결되기도 한다. 독자는 진실된 글을 보면,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거기서 뭔가를 배운다.
회고록은 ‘사실’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꿈과 이야기 사이에 놓인 글로 보는 게 맞다. 저자는 조언한다. “꿈과 이야기 사이 그 반반이 섞인 공간에 서서 서성여보라.” 회고록은 과거를 가지고 현재에 싸우면서 다가올 미래를 여는 가능성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사실과 세부 사항에만 집착한다면 회고록을 쓰는 이는 더 큰 세계를 잃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회고록 안에는 사실만이 아니라 이미지와 감각, 계절, 바람, 날씨, 풍경이 살아 숨 쉬어야 한다. 풍경은 등장인물을 땅에 단단히 붙들어둔다. 그러면 거기서 정서가 환기된다. 시간과 공간의 질감이 살아 있을 때 회고록 속 인물들은 생기를 얻고, 이야기는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쓰는 이의 ‘언어’다. 언어를 갈고닦아 드넓게 펼치는 것은 당신의 사고를, 감정을 세상이라는 현실에 드리우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 단어 하나, 감정 하나, 사고 하나를 건져올리는 것이다.
회고록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미래에 언제나 상실을 손에 쥘 수밖에 없다. 이때 기억을 일깨우면서 의미를 향해 다가가는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러면 기억의 파편들은 전체에 좀더 가까워질 것이고, 완전한 전체를 향해 갈 때 진실은 점점 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즉 회고록 쓰기는 자기 자신에게 더 깊은 앎을 선물로 주는 행위다.
어떤 글이든 마찬가지지만, 회고록 역시 ‘결단’을 요구한다. 세부 사항에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지, 내 이야기에 누구를 들어오게 하고 누구를 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회고록 작가가 다루는 시간은 압축될 수밖에 없고, 사건은 징검돌을 건너듯 건너뛰게 된다. 그것이 바로 전략이고 선택이다. 플롯은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의미를 띠게 된다.
마지막으로 회고록은 누구에게든,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때 “당신의 유일한 보호막은 아마 당신이 쓴 글,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케파트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