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 도입 후 달라진 진료실과 처방전,
그때의 환자를 지금 치료한다면
1991년, 저자는 처음으로 암 환자를 진료한다. 그 당시 혈액 검사, 흉부 X선 검사, 흉부 CT 스캔 그리고 폐에서 암 조직을 떼어 내는 생검 등을 통해 폐암을 진단하고 백금 기반 항암제나 탁센 기반 항암제를 처방했다. 32년이 지나 정밀의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정밀의료 도입 후 달라진 진료실에서 달라진 처방전으로 그 환자를 다시 진료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저자는 우선 암 진단을 위해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검사 방법에 추가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을 실시하고, 적합한 치료제를 선택하기 위해 이 환자의 암은 어떤 유전자가 어떤 유형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지 파악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다음으로 환자의 유전정보에 혈액 검사 결과, 영상 검사 결과, 병리 검사 결과 및 환자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직업적인 특성이 어떠한지, 흡연 및 음주 여부 등에 대한 임상정보를 종합해 폐암 중에서도 KRAS G12C 돌연변이를 갖고 있으며 뇌 전이를 동반하는 비소세포폐암 4기로 진단하고, 이 환자에게 딱 맞는 KRAS 저해 표적치료제로 치료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저자는 최근 4~5년 전부터 이와 같이 ‘정밀의료’를 임상 진료 현장에 도입하여 암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다.
과거 통계의 맹점이나 부족한 점들을 찾아내는 정밀의료
저자의 전문 분야인 암을 예로 들면, 하나의 치료법으로 모든 대상 환자들에게 잘 들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 기존의 ‘항암화학요법’인데, 실제 효능은 들쭉날쭉하며 부작용은 아주 기초적인 것만 신경 썼다고 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2000년 초반에 등장한 것이 특정한 표적(타깃)을 가진 환자들만 선별하여 치료하는 ‘표적치료제’다. 지금까지 암 치료는 이 항암화학요법과 표적치료제 중심으로,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면 확증적 3상 임상시험의 생존곡선을 통해 기존 치료제보다 생존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뒤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아 시판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실제 진료실에서 암 환자를 치료해보면 임상시험과는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고 말한다. 즉, 생존곡선을 통해 보이는 통계의 이면에 이 치료제가 더 잘 듣거나 잘 듣지 않을 환자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2, HER2)가 과발현된 모든 유방암 환자에서 허셉틴(성분명: trastuzumab)과 같은 HER2 표적치료제가 생존기간을 연장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생존곡선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허셉틴이 듣는 환자와 듣지 않는 환자를 세분화할 수 있으며, 이는 유전체 검사에 의해 가능하다. 이와 같이 통계의 이면에 숨어 있는 환자를 찾아내는 것이 ‘정밀의료’다.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정밀의료’,
데이터 기반의 환자 맞춤형 진료를 꿈꾸다!
이 책은 기록과 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돌에 새긴 그림이나 문자, 목판, 종이, 금속활자, 컴퓨터와 태블릿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고 진화되어 왔다. 현재 우리는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기록들이 쌓인 빅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개발되어 필요로 하는 유용한 정보를 다시 뽑아서 활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시작으로 DNA 중합효소(DNA polymerase)를 이용하여 아주 적은 양의 DNA만으로도 짧은 시간에 특정 부위의 유전자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중합효소 사슬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PCR)과 분자유전학의 발전,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HGP)의 성공적인 완료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어진 기술적인 발전들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으로 상용화되어 진료 현장에까지 도입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오며 마치 작은 물줄기들이 강으로 합쳐지고 그 강들이 바다로 한데 모여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데이터’의 망망대해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형국이 되었다.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정밀의료’는 학문적 성과와 기술적 발전의 융합으로 기틀을 마련했고, 이 과정에서 ‘기록’을 통해 쌓인 ‘데이터’가 정밀의료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이 책은 정밀의료가 무엇인지, 기존 의학과 어떻게 다른지, 저자의 전문 분야인 암 치료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암 외에 정밀의료가 적용 또는 도입되기 시작한 질환 중에서 당뇨, 고혈압, 천식, 심부전, 희귀질환 등에 대해 독자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히 다루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 외에도 정밀의료 시대의 임상시험, 정밀의료가 제약산업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정밀의료를 현실화하는 데 있어 나타나는 문제점, 정밀의료로 달라질 미래 의료 서비스의 모습까지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다. 이제까지 이토록 자세하고 쉽게 ‘정밀의료’에 대해 정리한 책은 없었다. 이제 환자 개인의 맞춤형 치료를 위한 정밀의료를 개괄하고 그 전망과 잠재력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