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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조선의 역사

발해조선의 역사

  • 심백강
  • |
  • 바른역사
  • |
  • 2024-09-25 출간
  • |
  • 524페이지
  • |
  • 153 X 225mm
  • |
  • ISBN 979119528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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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중국 대륙 난하 중심의 리지린 민족사관

대동강 평양, 한반도 한사군 설을 배격하고 고조선의 강역을 압록강에서 하북성 동쪽 난하灤河 유역으로 확장하는 대륙사관의 기치를 든 것은 북한의 리지린이다.
요동군과 요서군의 기준이 된 고대의 요수를 현재의 요녕성 요하가 아닌 하북성 동쪽의 난하로 보고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인 패수를 현재의 북한 청천강이 아닌 요녕성 대능하로 본 것이 리지린 민족사관의 핵심이다.
북한 리지린의 관점은 남한의 윤내현 등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윤내현은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지금의 난하 유역이 고대의 요동이다.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은 지금의 난하와 그 하류 동부유역에 있는 갈석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말하였다.(『고조선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민음사, 1995)

북한 리지린 민족사학의 한계

하북성 난하가 고대의 요수이고 난하가 중국과 고조선의 경계였다는 리지린의 주장은 고조선의 영토를 대륙으로 대폭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식민사학에 찌든 한국 반도사학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다만 리지린의 주장은 다음 몇가지 문제점이 지적된다.
첫째 하북성 동쪽의 난하를 고대의 요하로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리지린의 추정일 뿐 난하가 요하라고 직접 언급한 고대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하북성 남쪽 보정시保定市 역수易水는 역수의 다른 이름이 요수라고 남북조시대 대표적인 학자 유신庾信(513~681)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난하가 아닌 역수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둘째 리지린이 난하를 고대의 요수로 비정하는데 주요한 근거로 작용한 것이 갈석산이다. 현재의 갈석산은 바로 난하 부근 하북성 동쪽 창려현에 있어 리지린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리지린은 『사기』 소진열전의 “연나라 남쪽에 갈석산과 안문산의 풍요로움이 있다(燕南有碣石雁門之饒)”라는 기록을 간과했다.
전국시대 연나라는 하북성 쪽에 있었는데 현재 갈석산은 하북성 동쪽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하북성 동쪽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과 다른 갈석산이 연나라 때 하북성 남쪽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셋째 『회남자』의 “갈석산으로부터 조선을 경유한다.(自碣石山 過朝鮮)”라는 기록이나 『전한서』에 한무제가 “갈석산을 지나서 낙랑군, 현도군을 설치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볼 때 갈석산은 조선의 서쪽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현재의 갈석산은 조선의 수도였던 노룡현의 서쪽이 아닌 동쪽에 있어 조선을 지나서 갈석산이 나온다. 위치가 뒤바뀌었다.
넷째 『진태강지리지』에는 “낙랑군 수성현遂城縣에 갈석산이 있다.”고 말했는데 하북성 동쪽 갈석산이 있는 현재의 창려현은 역사상에서 한번도 수성현으로 된 적이 없다. 그러나 남북조시대에 유신이 요수라고 언급한 하북성 남쪽 보정시 역수유역에는 지금도 수성진이 있다. 『진태강지리지』에 말한 낙랑군 수성현은 현재의 하북성 보정시 수성진이고 갈석산은 수성진 부근의 백석산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섯째 『태평환우기』 하북도 역주易州 역현易縣 조항에 연나라 소왕昭王이 현자 곽외를 예우하기 위해 역현에 갈석관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郭隗謂燕王 禮賢請從隗始 乃爲碣石館於臺前)
하북성 보정시 역수유역에 갈석산이 없었다면 왜 여기에 멋진 건물을 지어 갈석관이란 명칭을 붙였겠는가. 이는 갈석산이 역수유역에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연나라 시대 연과 고조선의 국경은 압록강이나 난하가 아니라 역수였다.
현재의 하북성 보정시에 있는 백석산과 역수가 연나라 진나라 한나라시대의 갈석산과 요수이고 시대에 따라서 다소의 변동은 있었지만 이곳이 고조선의 서쪽 경계, 즉 중국과 고조선의 국경선이었다.
리지린이 고조선의 서쪽 강역을 난하 이동 요서지역으로 간주한 것은 청천강을 중국과 조선의 경계로 인식한 반도사관에 비하면 크게 진전된 견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북성 남쪽의 백석산과 역수유역까지가 원래 고조선의 영토였다면 이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보다 훨씬 더 큰 민족의 역사영토를 중국에 떼어주는 격이다.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우리 강역을 축소시키는 우를 되풀이하는 꼴이 된다.

이 책은 『사고전서』에 나타난 새로운 고조선 자료에 근거, 북경이 한국의 고대영토임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밝혔다.

리지린은 생전에 『사고전서』에 실려 있는 고조선 관련 자료들을 섭렵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이 고조선의 수도였고 고조선이 옛 고죽국 땅 노룡현에서 건국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하를 고조선의 서쪽 경계로 설정함으로써 한국인의 고대 영토 북경을 모조리 중국 영토에 편입시키는 한계를 드러냈다.
『사고전서』는 청나라의 건륭황제가 청나라 이전의 중국 5000년 역사상의 문헌들을 집대성하여 약 8만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귀중한 고조선 자료들이 담겨 있다.
예컨대 『무경총요』의 북경 조선하朝鮮河, 『태평환우기』의 하북성 노룡현 조선성朝鮮城, 선비족 『두로공신도비명』의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관련 기록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금쪽같은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북경이 한국인의 고대영토이며 역사주권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고전서』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지금 중국의 수도 북경은 본래 발해조선의 강역으로서 한국인의 고대영토였고 따라서 북경의 역사주권은 우리 한국에 있다. 한국인이 북경의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사고전서』라는 세계가 공인하는 자료에 담겨 있다.
발해조선을 『사고전서』로 되살려 아시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은 이 책은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는 시진핑의 한국사에 대한 잘못된 역사 인식에 경종을 울려서 역사테러의 재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모한 짓인가를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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